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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선수를 살리는 수건, 죽이는 수건



태권도·권투 등의 격투경기 중에는 목을 졸린 선수가 손바닥으로 바닥을 치거나 선수의 코치나 감독이 경기장에 흰 수건을 던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기권하겠다는 뜻이다. 당장 경기를 포기하더라도 선수의 건강과 미래를 보호하기 위한 ‘전략상 한 발 후퇴’다. 지난달 16일 인천 선학체육관에서 열린 인천시장기 태권도 대회에서도 한 코치가 흰 수건을 던졌다.


하지만 놀랍게도 수건을 던진 건 당시 이기고 있던 선수의 코치였다. 해당 코치는 “상대팀 선수가 가정형편이 어려워 양보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고 변명했다. 선수는 14대 7로 이기고 있었지만 경기는 패배했다.


사건을 은폐하려 했던 정황도 보인다. 선수의 아버지는 시합이 끝난 이튿날인 지난달 18일 인천광역시태권도협회에 민원을 제기했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난 지난주까지도 아무 답변을 받지 못했다. 그에 따르면 반년간 아들을 지도한 코치와 감독이 찾아와 “4000만원이면 되겠느냐”며 회유하기도 하고,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와 “유명 대학의 체육학과 교수인데 한번 만나자”는 연락을 받기도 했다. 주변에선 “코치가 사표를 냈는데 어떡하느냐. 당신만 그만두면 다 끝난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고 한다.


스포츠의 매력은 정해진 룰을 지키며 스스로 노력과 단련을 통해 최고의 성과를 낸다는 데 있다. 이 룰은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똑같이 적용된다. 하지만 승부조작은 선수의 기량과 노력보다 돈이나 인맥 같은 ‘변칙적 룰’이 경기를 지배하게 한다. 이런 이유에서 승부조작은 비난받고, 여기에 연루된 지도자·심판은 영구제명될 수도 있다.


3년 전 태권도 경기 승부조작으로 피해를 본 선수의 아버지가 자살까지 한 사건이 있었다. 하지만 승부조작은 여전하다. 인천광역시태권도협회는 뒤늦게 다음주 중 코치·감독뿐 아니라 심판과 경기 관리자 등 전원을 대상으로 승부조작 사건을 조사하고 관련자를 징계하겠다고 밝혔다. 한 시민단체에서는 “협회의 고위 임원이 피해자의 정당한 민원을 한 달 가까이 묵살한 정황도 있어 경찰 등 사법기관이 객관적으로 수사를 할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승부조작으로 피해를 본 선수는 이제 갓 고등학교에 입학한 열여섯 살이다. 이 선수는 “태권도를 그만둬야 할 것 같다. 좀 더 정정당당하게 노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곳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협회와 사법당국이 공정한 조사나 수사로 지킬 수 있는 것은 한 선수의 미래뿐이 아니다. 이를 지켜보고 응원하는 사람들이 믿는 정정당당한 스포츠 정신과 감동까지 빼앗지 않도록 해야 한다. 코치가 던지는 흰 수건의 의미를 관중이나 심지어 선수도 의심하게 해서는 안 된다.


백민경 사회1부 기자


백민경 기자 baek.mink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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