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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포켓몬'이 없었더라도 'AR 대박' 가능했을까?

만약 '포켓몬'이 없었더라도 'AR 대박' 가능했을까?




[H커버스토리] 탄생 26년된 증강현실(AR) 대박 비결은





군용장비, AR확산에 기여

전투기ㆍ전차 조종사 헬멧에


현재 속도ㆍ목표물 위치 표시돼


검색 가능 ‘구글 글래스’로 진화


‘포켓몬 고’ 개발로 대중화


열풍 뒤엔 ‘마케팅 전략’ 숨어


“장차 특정 장소에 희귀몬 푼 뒤


사람을 끌어 광고수익 챙길 듯”


주부 김모(40)씨는 6년 전 딸을 위해 30권짜리 전집을 샀다.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스마트폰용 소프트웨어(앱)를 설치하고 스마트폰 카메라로 책을 들여다보면 공룡이나 로켓이 입체로 나타나는 증강현실(AR) 책이었다. 그러나 당시 네 살이었던 딸은 유독 이 책들을 잘 보지 않았다. 딸은 “공룡이 너무 무섭다”고 말했다. 김씨는 결국 1년 후 먼지가 켜켜이 쌓인 책을 구입가의 절반도 안 되는 가격에 처분했다.


이동통신사 KT도 5년 전 스마트폰용 게임 ‘캐치캐치’를 출시했다. 거리에서 이 게임을 실행하면 나무, 에스컬레이터, 소화전 등에 숨은 몬스터가 보이는데 이 몬스터를 잡으면 캔디나 할인 쿠폰을 얻을 수 있었다. 내려받기 300만회, 실제 이용자 수 120만명을 기록하면서 흥행에 성공하는 듯했으나 KT는 결국 1년 반 만에 서비스를 접었다. 캔디나 쿠폰으로 물건을 사려면 제휴업체들이 많아야 하는데 AR 기술이 낯설었던 광고주들이 하나 둘 떠났기 때문이다. 하루에 300개로 수집이 제한된 캔디도 이용자들의 불만을 샀다. 햄버거 세트(캔디 6,710개 소모)를 사먹으려면 무려 23일간 시내를 돌아다니며 몬스터 잡기 막노동을 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최근 증강현실 게임 ‘포켓몬 고’가 전 세계를 강타하며 AR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지만 사실 AR는 이미 오래 전 상용화한 기술이다. 역사도 무려 26년이나 된다. 1993년 세계 최초의 스마트폰인 IBM의 사이먼이 나온 것보다도 3년이나 빨랐다. AR 개념은 비행기 제조사인 보잉의 연구원이었던 톰 코델이 1990년 처음 도입했다. 비행기 조립 과정에서 전선 연결 작업을 하는 작업자들에게 복잡한 전선들이 각각 어디에 연결되는지 알려주기 위해 실제 전선들 위에 가상의 이미지를 얹어 보여준 것이 시초였다.


이후 AR의 발전과 확산엔 군수 산업의 몫이 컸다. 전투기나 전차 조종사가 머리에 쓰는 형태의 장비로 눈 앞에 달린 투명창에 현재 속도와 목표물 위치 등을 표시하는 기능이 있었다. 현재 이 장비는 작고 가벼워져 개인용 헬멧에 부착하는 식으로 진화했다. 구글도 안드로이드 운영 체제를 내장해 인터넷 검색과 길 안내 같은 기능 등을 갖춘 안경 형태의 구글 글래스를 2014년 선보였다.


AR를 대중화시킨 건 포켓몬 고 개발사인 나이앤틱이다. 구글의 사내 벤처로 출발한 이 회사는 2012년 위성항법시스템(GPS)를 이용한 위치기반 AR 게임 ‘인그레스’를 출시했다. 이용자들이 두 편으로 나뉘어 스마트폰에 나타나는 진지를 확인하고 쟁탈전을 벌이는 일종의 땅따먹기 게임이었다. 200여개 나라에서 1,500만명이 이 게임을 즐겼다. 그러나 포켓몬 고 만큼의 흥행은 아니었다.


한국일보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개발한 숲 속 증강현실 시스템을 어린이들이 체험해보고 있다. ETRI 제공



이런 오래된 기술인 AR를 기반으로 한 포켓몬 고는 어떻게 출시 하루 만에 내려받기 1억건 돌파, 하루 2,000만명 이상 이용이란 열풍을 불러올 수 있었을까. 전문가들은 게임의 모티프가 된 만화영화 ‘포켓몬스터’의 힘을 빼 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사용자가 포켓몬스터의 주인공이 돼 만화에 등장하는 몬스터를 잡아 성장시킨다는 내용이 이 만화를 접한 사람들에게 향수를 불러 일으켰다. 몬스터들도 전혀 무섭지 않다. 고압전기를 쏘는 피카추, 불을 내뿜는 공룡 파이리 등의 몬스터들은 귀엽기까지 하다. 사용자가 다니는 길에 만화 속 캐릭터들이 등장하면서 현실과 만화는 경계가 모호해지고 이내 게임 속으로 빨려 들어갈 정도로 몰입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런 이유로 서비스를 시작한 미국, 호주 등에서는 몬스터를 찾아 다니다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도로 밖으로 이탈하는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포켓몬 고 열풍에는 고도의 마케팅 전략도 숨어 있다. KT의 캐치캐치는 처음부터 자사의 와이파이존에 다수의 몬스터를 풀어 와이파이 서비스를 홍보했다. 또 CGV 몬스터를 잡으면 영화관람권을 주는 식으로 제휴업체들의 광고 플랫폼(기반)으로 사용됐다. 그러나 포켓몬 고는 아직 본색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게임 업계에서는 먼저 게임만 공개해 이용자를 확보한 뒤 특정 상점 인근에 희귀한 몬스터를 풀어 사람들을 끌어 모으면서 광고 수익을 챙길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게임 아이템 판매에 주력한 나머지 사용자들에게 “돈에 눈이 멀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국내 게임업체들의 행태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캐치캐치의 위치기반 서비스를 설계했던 최동욱 KT IT기획실 차장은 포켓몬 고에 대해 “게임의 이야기 전개에 사용자가 깊게 빠져들어 게임 속에서 재미있게 놀 수 있는데다 익숙한 몬스터들이 향수까지 자극해 더 몰입하게 만든다”며 “포켓몬 고의 흥행은 기술보다 이야기 전개와 캐릭터가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허정헌 기자 xscope@hankookilbo.com

Tags: 경제 , 경제일반 , 한국일보 , 종합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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