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전 이 영화에선 이미 AI와 체스 뒀다


50년 전 이 영화에선 이미 AI와 체스 뒀다

지난 5일 세계적인 인공지능(AI) 과학자 57명이 한국과학기술원(KAIST)과의 공동 연구를 보이콧하겠다고 선언했다.

KAIST가 설립한 국방인공지능융합연구센터가 AI를 이용해 사람을 살상하는 로봇을 개발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KAIST가 즉각 살상용 AI 무기 개발 계획이 없다고 밝히면서 과학자들은 보이콧을 철회했다.

AI가 사람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는 이미 반세기 전부터 시작됐다. 1968년 4월 2일 미국에서 개봉한 공상과학(SF)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우주선을 조종하는 AI인 ‘할(HAL) 9000’이 임무를 계속하기 위해 자신을 고장 내려는 우주인들을 죽이려고 하는 모습을 그렸다. 스페이스 오디세이에는 AI를 비롯해 태블릿PC, 영상통화 등 오늘날의 다양한 첨단 기술들이 등장한다. 과연 영화가 예측한 미래는 얼마나 현실이 됐을까.

AI와 사람의 체스, 30년 앞서 예견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SF 작가인 아서 클라크와 함께 만들었다. 영화는 2001년 목성으로 가는 우주선 디스커버리호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두 조종사는 목성을 탐사하러 간다고 알고 있으나 실제 임무는 외계의 지적 생명체가 남긴 흔적을 찾는 것이었다. AI 할은 자신의 비밀 임무를 계속 수행하기 위해 방해가 되는 사람을 없애기로 한다.

국제학술지 ‘사이언스’는 2015년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가장 과학적인 영화로 선정했다. 사이언스는 “영화에 등장하는 AI인 할 9000은 자신이 만들어진 목적에 충실하고 똑똑하다”며 “이후의 모든 SF 영화는 물론, 실제 AI 연구에서도 롤모델이 됐다”고 평가했다. 영화 제작진은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인공지능연구소의 공동 설립자인 마빈 민스키 교수의 의견을 참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AI란 말은 이미 1956년 컴퓨터 학술대회에 등장했다. 당시까지는 AI 컴퓨터는 사람이 시킨 일만 잘하는 기계 정도로 생각했지 사람과 대등하거나 월등한 지능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영화 속 할은 당시 사람들의 생각을 뛰어넘었다.

할은 사람의 얼굴을 알아보고 대화를 나눴다. 심지어 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입술 모양만 보고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냈다. 현실에서는 페이스북이 2014년 사람 얼굴을 인식하는 AI 딥페이스 기술을 개발했다. AI는 수많은 사진을 학습하는 딥러닝을 거쳐 스스로 사람과 고양이 얼굴을 구분하는 법을 터득했다.

 

조선비즈

1968년 작 SF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오늘날 상용화된 다양한 첨단 IT를 예견했다. 우주인들은 픽처폰으로 지구의 가족과 영상 통화를 한다(맨 위 사진). 또 인공지능 할과 마주 보고 체스도 둔다(가운데). 1997년 IBM의 인공지능이 실제로 세계 체스 챔피언을 이겼다. 우주인들은 식사하면서 태블릿 PC 같은 장치로 TV 뉴스를 보기도 했다(아래). /워너 브러더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영화에서는 우주인이 AI와 체스를 두는 장면도 나온다. IBM이 개발한 AI 딥블루는 1997년 세계 체스 챔피언을 이겼다. 2016년에는 딥마인드의 알파고가 이세돌 9단과의 바둑 대결에서 승리했다. AI의 이름 할은 ‘발견법적으로 프로그램된 연산컴퓨터(Heuristically programmed ALgorithmic computer)’란 말의 약자이다. 정보가 완전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미 정립된 공식이 아니라 시행착오를 통해 스스로 지식을 알아내는 컴퓨터란 의미이다. 오늘날 AI의 딥러닝 학습법이 바로 그렇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영화에 도움을 준 IBM의 영문 알파벳을 한 글자씩 앞으로 옮겨 HAL이란 이름을 만들었다는 말이 나왔다. 영화에 나오는 컴퓨터에도 IBM 로고가 등장한다.

삼성·애플 특허분쟁에 등장한 영화

영화에는 AI 이외에도 다양한 첨단 기술이 등장한다. 대표적인 것이 태블릿PC이다. 우주인들은 식사를 하면서 직사각형 모양의 기기로 신문을 읽고 TV 뉴스를 본다. 이 장면은 2011년 삼성전자애플과의 태블릿PC 특허소송에 증거물로 제출했다. 애플은 “삼성전자의 태블릿PC인 갤럭시탭이 아이패드 디자인을 도용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영화에 나오는 기기들도 직사각형에 테두리가 없는 디스플레이 스크린으로 이뤄져 있다”며 “아이패드 디자인은 애플의 전유물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영화에는 21세기 들어 상용화된 영상전화도 등장했다. 우주정거장 탑승객들은 AT&T의 로고가 선명한 ‘픽처폰(Picturephone)’ 부스에 들어가 신용카드를 넣고 지구에 있는 가족과 영상통화를 한다. 각종 그래픽이 컴퓨터 모니터에 뜨는 모습도 오늘날과 흡사하다. 당시에는 아직 컴퓨터가 영상을 만들지 못하고 카메라가 촬영한 영상만 보여줄 수 있었다.

생체정보 인식기술도 등장한다. 영화 속 우주정거장의 입국 심사장에서는 사람의 목소리만으로 바로 신원 확인이 된다. 현재 성문(聲紋)이나 지문(指紋), 홍채 등 다양한 생체정보로 신원을 확인하는 기술들이 개발됐다. 민간항공사 팬암이 우주왕복선을 운영하는 장면은 오늘날 민간 우주업체 스페이스X가 국제 우주왕복선으로 화물 운송을 맡고 있는 현실과 같다. 짜 먹는 형태의 우주 식품도 현재 국제 우주정거장에서 우주인들이 먹는 것과 흡사하다. 영화는 50년이 지난 요즘의 시각으로 봐도 진부하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이는 영화에 등장하는 각종 소품을 당대 최고의 기술 기업들이 제공한 덕분이다. 우주왕복선의 컴퓨터 디스플레이는 RCA, 우주만년필은 파커, 기내식은 제너럴 푸드, 우주복은 듀폰, 컴퓨터는 IBM 등이 디자인해 영화 제작을 도왔다.

인공중력·동면장치 등은 실현되지 않아

물론 영화에 등장한 기술 중에는 아직도 실현되지 못한 것도 많다. 우주여행이 대표적이다. 영화에는 목성행 우주선이 나오지만 인류는 2030년대에 화성 유인(有人) 탐사를 계획하고 있는 단계이다. 영화 속 힐튼사의 우주정거장은 거대한 바퀴를 회전시켜 인공 중력을 만든다. 현재 국제 우주정거장은 무중력 상태여서 우주인들이 둥둥 떠다닌다. 하지만 무중력 상태에서 오래 있으면 뼈와 근육이 손상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NASA는 화성 탐사 등 장기간 우주여행에 대비해 우주선에 인공중력을 구현하는 문제를 고려하고 있다. 영화에는 우주인들이 동면(冬眠) 상태로 장기간 우주여행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역시 미래 우주여행을 위한 핵심 기술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이영완 과학전문기자(ywlee@chosun.com)

<저작권자 ⓒ ChosunBiz.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mments 0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게시물 선택
글+이미지
텍스트 에디터 사용가능
이미지
포토, GI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