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산업 혁명과 의료의 미래] 의료경쟁력 핵심 `데이터 거버넌스`


[4차산업 혁명과 의료의 미래] 의료경쟁력 핵심 `데이터 거버넌스`

2010년 당시 미래창조과학부가 지원하던 ‘헬스아바타’ 사업을 시작하면서 한 개인에 대한 모든 건강정보를 ‘개인 빅데이터’로 정의하고 3계층으로 나눌 것을 제안했다. 1) 가장 기본인 병의원 ‘진료기록’ 2) DNA를 분석한 ‘유전체 데이터’ 3) 스마트폰이 촉발한 ‘라이프로그(일상생활 데이터)’라는 3계층이다. 이 같은 분류가 널리 받아들여져 정답처럼 사용되는 모습에 스스로도 놀라곤 한다.

스마트시계나 운동화에서 측정되는 라이프로그는 의료인의 도움 없이 환자 스스로 운영하는 데이터다. 내 라이프로그는 나 자신을 위해 24시간 쉬지 않고 일한다. 이제 약 먹을 시간이 됐다든지, 운동을 좀 더 하라든지, 음식은 뭘 먹으라는 등의 조언을 쉬지 않고 해댄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의료기록은 어떨까? 실망스럽게도 내 의료기록은 24시간 잠자고 있다. ‘우리 병원은 100만명 의료기록을 비교 분석해서 개인 맞춤 치료를 제공한다’는 원장님 광고는 그냥 립서비스다. 의료기록은 내가 병원에 갔을 때만 잠시 의사의 손을 통해 열리고, 나를 위해 일한 뒤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드는 숲속의 공주다.

의료기록도 라이프로그처럼 24시간 나를 위해 일하게 할 수는 없을까? ‘헬스아바타’는 바로 그 질문에 답한다. 스마트폰에 ‘개인 빅데이터’로 아바타를 만들고, 인공지능으로 생명을 불어넣으면 24시간 나를 대신해 의사도 만나고 인터넷도 뒤져서 요약해주는 건강 비서가 탄생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멋진 일이 왜 아직도 안 일어났을까? 불행히도, 의료기록의 현실은 절망적이다. 의료기록은 사람 의사가 읽을 수는 있어도 기계가 읽을 수는 없다. 데이터를 못 읽으면, 인공지능은 무용지물이다. 알고리즘은 기계가 학습할 수 있지만 데이터는 학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의료시스템은 ‘데이터 거버넌스’를 갖추지 못했다. 진료비 청구에 필요한 진단, 처치, 처방 정도만 관리한다. 가장 중요한 사람 의사의 기록은 다른 병원 의사가 읽기도 쉽지 않다. 정보는 주로 의료 서식에 기록된다.

하지만 병원은 사용 중인 서식과 그 문항의 개수도 모른다. 서식과 문항은 그때그때 추가되고 무질서하게 증식된다. 같은 개념이 중복 출현하고, 다른 개념이 하나처럼 사용된다. 한 병원 안에서도 그러니 병원을 넘어가면 바벨탑 같은 혼돈이다. 우리의 의료시스템은 데이터 거버넌스 없이 워드프로세서에 타이핑하던 시절에서 크게 발전하지 못했다.

혹자는 의학 용어 표준화가 답이라 한다. 하지만 용어 표준만으로는 풍부한 의학 개념을 서술할 수 없다. 이미 300만개의 표준 의학용어가 있지만 쓸 수 없다. 의사들이 게을러 표준을 안 쓴다는 비난은 틀렸다. 용어 표준은 진료비 청구나 자료 분석에는 쓸 수 있지만 환자 진료 목적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통증’ 하나도 잘 서술하려면 100개가 넘는 개념이 필요다. 온톨로지라는 거대한 관념 체계가 완성되면 해결된다는 예언도 있다. 벌써 40년을 기다렸지만 강림하지 않았다. 의료 개념의 변화 속도가 더 빨랐다.

그럼 ‘헬스아바타’ 사업은 실패했을까? 아니다. 매우 성공적으로 20개 병원의 혈액투석실에서 만성콩팥병 환자 진료에 사용 중이다. 다양한 인공지능도 쉽게 연동된다. 환자의 스마트폰으로 정보도 전송되고 우울증 설문도 자동 처방된다. 서로 다른 병원 데이터들은 어떻게 통합했을까? 일단 혈액투석실로 범위를 확 좁혔다. ISO/IEC 11179 메타데이터 표준을 적용하여 사용되는 모든 의학 개념을 전문가가 하나하나 정의했다. 이 상세 정의를 참조하는 자동변환기 개발로 병원 데이터를 추출·통합했다. 데이터 처리는 기계가 하지만, 데이터의 의미는 사람 전문가가 상세히 정의해 기계를 도왔다.

너무 많다던 의료 개념은 어떻게 다 정의했을까? 의학 용어는 300만개지만, 실제 사용 데이터 항목은 15만개 정도다. 메타데이터 구조를 발전시켜 또 10분의 1로 줄였다. 새 항목의 추가나 버전 관리 체계도 갖추었다. 이제 의료의 다른 영역으로 확장만 하면 된다. 자잘한 소모품은 관리하고 핵심 경쟁력인 데이터는 관리하지 못해서는 4차 산업혁명의 파고를 넘을 수 없다. 데이터 거버넌스 확립은 국가를 포함한 모든 조직의 필수 과제다.

[김주한 서울대 의대 정보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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