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ch] 왼손


내가 어렸을 때, 내가 자는 방은 영의 길, 영혼이 지나다니는 길이었던 것 같다.
그 방에서 기분 나쁜 일이 여러 번이나 있었다.
 
제일 강렬한 체험은 12살의 여름.
 
언제나처럼 빨리 이불 속에 들어가 꾸벅 꾸벅 졸고 있었는데 갑자기 왼손이 잡아당겨졌다.
이불 속에서 끄집어내지는 바람에 패닉 상태가 되어 있는 중, 손목 부근에서 묵직한 아픔이 느껴졌다.
 
일본 병사 같은 차림새를 한 남자가 흐린 눈으로 일본도를 내려치고 있었다.
몇 번이나 몇 번이고 똑같은 곳을 베었다.
 
그러다 이윽고 만족한 건지 내 손을 놓더니 붙박이장 쪽으로 사라져갔다.
나는 울면서 “베어졌다, 베어졌어”라고 말하며 부모님이 계신 곳으로 뛰어갔지만 부모님은 “무슨 말을 하는 거야”라고 말씀하시며 나를 때렸다.
 
확실히 손목엔 상처가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아픔은 있었다.
하룻밤 자고 일어나 보니 아픔은 사라졌지만 그 후로 내 왼손은 골칫덩어리가 되었다.
 
혹시 환지, 헛팔다리라는 걸 알고 있는가.
 
다리나 팔이 절단된 사람이 없을 터인 발끝과 손가락끝의 가려움을 호소하는 현상이다.
나는 그 반대로, 가끔 손목부터 그 밑까지가 없는 듯한 감각이 들었다.
 
처음엔 신경에 이상이 있는 게 아닌가 생각했지만 중학생이 되어 야구부에 들어가보니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바깥쪽 수비에 있었는데 볼을 쫓을 때 글러브를 떨어트렸다.
감독에게 혼났지만 수비하고 있으니 또 떨어트렸다.
나는 떨어트렸다는 느낌이 없는데 정신을 차려보면 떨어져 있는 것이다.
그밖에도 자전거에 타고 있을 때 밸런스가 무너져서 넘어지기도 했다.
왼손을 쓰는 게 무서웠다.
 
사진을 찍을 땐 나도 모르게 왼손을 감춘다.
‘안찍히지 않을까’하는 예감이 있기 때문이다.
 
합숙 중 내가 모르는 사이에 사진이 찍힌 적이 있다.
그걸 찍은 친구가 창백해진 얼굴로 “야, 이거”라고 하길래 “아…결국…”이란 생각을 하며 조심스레 사진을 받았다.
 
캠프장의 강변에서 놀고 있는 사진이지만 서 있는 나의 왼손은 손목까지밖에 없고, 그 밑은 발 주변에 떨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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