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의 봄’…재판관 5명 교체되는 9월이 ‘고비’


'헌재의 봄'…재판관 5명 교체되는 9월이 '고비'

탄핵·공백에 양심적 병역거부 등 주요사건 적체

이진성 “하루를 6년처럼”…심리 집중 예고

(서울=뉴스1) 최동순 기자 = “단 하루를 근무하더라도 6년을 근무하는 것처럼, 제 책무를 다 하겠습니다. 시간의 길이보다는, 시간의 깊이로 기억되기를 희망합니다.”
이진성 헌법재판소장이 자신의 소장 취임식에서 한 이 말은 지난 한 해 헌법재판소가 겪어야 했던 격랑을 축약해 보여준다.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을 끝낸 뒤에도 소장·재판관 공백과 정치권의 공격으로 힘든 한 해를 보냈다.

마침내 ‘봄’이 찾아왔지만, 그 끝은 어느정도 예고돼 있다. 9명의 헌법재판관 가운데 이 소장 등 5명의 재판관이 9월 임기가 종료되기 때문이다. 올해 후반기 헌재는 또다시 후임 재판관 임명을 두고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 있다.

이 짧은 기간 동안 헌재는 양심적 병역거부 등 그동안 미뤄왔던 주요 사건에 대한 결론을 내려야 한다. 첨예한 사회적 담론을 담아내야 하는 만큼 ‘하루를 6년처럼’ 심리에 집중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 탄핵에 이은 대행체제 논란…역할 공백 장기화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촛불집회로 분출된 국민적 여망의 한 가운데에 있었다.

헌재는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지 92일 만인 지난 3월10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파면을 결정했고, 법에 의한 정치 권력의 교체를 이루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국정이 정상화된 이후에도 헌재는 ‘권한대행’ 체제를 이어갔다. 문재인 대통령은 서둘러 김이수 재판관을 헌재소장에 지명했지만, 임명동의안은 3개월 넘게 국회에서 계류하다 결국 부결됐다. 헌재는 이미 지난해 1월부터 7개월 넘게 권한대행 체제를 이어 오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후 갈등은 더 심화됐다. 청와대가 소장 지명 없이 권한대행 체제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정치권 특히 야권은 헌재 국정감사를 보이콧하며 반발했다. 학계에서도 위헌 소지에 대한 지적이 제기됐다. 권한대행 체제는 불가피한 상황이라야 그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고 인사권자는 수장 공백을 빠른 시일 내에 메워야 할 의무가 있는데, 권한대행 체제를 공식화한 것은 부적절했다는 것이다.

헌재가 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을 파면하면서, 헌재에 대한 정치권의 견제가 심화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이유정 재판관 후보자 마저 중도 하차하면서 헌재의 고난은 장기화로 치달았다.

‘정쟁’으로 헌재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서, 주요 사건에 대한 결정은 미뤄졌다.

뉴스1

2017.3.12/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군대 대신 감옥을 택한 청년들…주요사건 심리 집중

헌재의 공백에 법의 굴레 밖에 있던 ‘사회적 약자’들의 아우성은 커져만 갔다. 청년들은 군대 대신 감옥을 택했다. 애초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에 대한 헌재 결정은 2016년 말 나올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으로 미뤄졌고, 이후 재판관 공백 등으로 결론을 내지 못했다.

헌재는 조만간 이 사건에 대한 결론을 낼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헌재는 양심적 병역거부와 관련해 2011년 8월 7(합헌)대 2(위헌)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결정한 바 있다.

하지만 6년이 지났고, 상황은 많이 바뀌었다. 최근 5년간 종교 및 기타 신념의 이유로 입영 및 집총을 거부한 남성은 총 2356명으로 이 가운데 1693명은 이미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대법원 판례를 뒤집고 무죄를 선고하는 하급심 판결이 크게 늘었다.

당시 심판에 참여했던 재판관들이 모두 교체됐다. 이진성 소장은 청문회에서 “양심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처벌도 감수하는 상황을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며 “대체복무제의 필요성에 공감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낙태 여성에게 죄를 물을 수 있도록 한 형법 269조와 270조에 대한 헌재 판단도 주요 사건으로 꼽힌다. 헌재는 2012년 8월 270조의 ‘동의낙태죄’에 대한 위헌 여부를 판단하며 ‘자기낙태죄’와 함께 모두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하지만 결혼과 육아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면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해 낙태가능 시기 명시 등 세부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여성계와 학계를 중심으로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9월 헌재 과반 교체…국회 진통 불가피

완성체인 헌재는 그리 길지 못할 전망이다. 이진성 소장을 비롯해 김이수·강일원·안창호·김창종 등 5명의 재판관 임기는 오는 9월19일 종료된다.

총 9명으로 구성된 헌법재판관은 대통령이 3명, 국회가 3명, 대법원장이 3명을 지명해 대통령이 임명한다.

올해 임기가 만료되는 ‘국회 몫’ 재판관 3명과 헌재소장은 모두 국회 동의를 거쳐야만 임명이 가능한 자리다. 지금 같은 정국이 이어질 경우 진통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최고 헌법기관인 헌재는 ‘9인 체제’에 적합하게 구성돼 있다. 헌법소원 사건의 위헌 결정을 위해서는 재판관 6명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5(위헌)대 3(합헌)으로 의견이 갈릴 경우, 9인 체제였다면 6대 3 위헌이 될 수 있는 사건이 8인체제에서는 합헌이 될 가능성이 있다.

학계에서는 빈번한 헌재 공백을 막기위해 정치권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현행 법체계와 제도 안에서, 그것에 근거해 발생하는 헌법 위반을 바로잡는 역할을 한다. 재판관 공백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소외와 권리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진성 소장은 지난 청문회에서 “후임자 임명 때까지 임기만료 후에도 직무를 수행토록 규정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dos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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