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고싶지 않았다”…김환기 청록점화 16억원부터 부른다


서울옥션 ‘제145회 미술품 경매’

흔치 않은 ‘청록점’ 화폭 가득 채워

뉴욕시대 말기 4년여 고심해 완성

천경자의 옆모습 ‘여인’ 4억원부터

日서 귀환 김홍도 ‘화첩’ 4~10억원

총173점 120억원어치 새주인 찾아

[이데일리 오현주 선임기자] “오후 2시. 약속한 시간에 작품들이 A·5회장에 반입되어 오다. 작은 공간에 작품 7점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걸 건가에 모두가 골몰하다. 김창렬, 정상화들이 진열을 돕다. 진열을 끝내고 오래오래 바라보다. 상파울루 때와는 또 다른 감회가 서리다. 냉정하게 비판해보다”(김향안 에세이집 ‘월하의 마음’ 중).

1978년 10월 18일. 프랑스 파리에선 국제아트페어인 피악(FIAC) 준비가 한창이다. 미국 뉴욕의 포인텍스터갤러리는 특별한 작품을 내놨다. 수화 김환기(1913∼1974)의 ‘무제’. 이제는 거장 반열에 오른, 당시에는 젊은 화가였던 김창렬·정상화 등을 이끌고 이날 전시준비에 바쁜 이는 김환기가 아니다. 그때는 이미 아쉬운 나이로 김환기가 타계한 지 4년 뒤다. 대신 그 자리에 나선 이는 김환기의 부인인 김향안(1916∼2004). 국제화상이 대거 참가해 작품을 사고파는 그곳에서 그이는 작지만 단호한 결정 하나를 내린다. ‘Not for Sale’(이 작품은 팔지 않습니다). 화랑전시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이 문구를 작품 ‘무제’의 뒷면에 써넣은 것이다.

김환기가 잘 쓰지 않던 청록색. 그 청록의 점으로 빼곡히 화면 전체를 채운 전면점화. 제작기간도 무려 4년여에 걸칠 만큼 고뇌가 컸던 작품. 아마 그 저간의 사정을 가장 잘 알고 있던 사람이라면 바로 그의 아내가 아니었을까. 타계 직전까지 김환기가 마음에 품고 있던 그 그림을 한시라도 곁에 더 두고 싶었던 아내의 애틋함이 그 문구 하나로 발현됐을 거다.

“팔고 싶지 않았던” 김환기의 ‘무제’(1969∼1973)를 앞세운 ‘서울옥션 제145회 미술품 경매’가 19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 서울옥션 스페이스에서 진행된다. 총 173점, 낮은 추정가로 120억원어치다.

▲청록의 얼룩·번짐…한결같은 점찍기

주로 푸른색이다. 국내 미술품 경매 최고가 1∼6위를 휩쓸고 있는 김환기의 전면점화 중 절반인 3점이 푸른계열이다. 그외에는 노란색과 잿빛. 물론 시장에는 붉은색·검은색 전면점화가 간혹 소개되기도 했다. 하지만 청록색은 거의 없었다. 굳이 꼽으라면 1972년에 그린 ‘18-Ⅱ-72 #221’ 정도다. ‘무제’를 제작하던 중간에 발표한 작품이다.

86.5×60.7㎝ 사이즈로 30호쯤 되는 화폭은 작은 틈도 주지 않고 무수히 채워 넣은 점의 향연이다. 마치 은하수를 찍어낸 듯 일정한 이동의 흐름을 보이던 전면점화와는 다른 양상이다. 하지만 늘 그렇듯 낱낱이 세포처럼 박힌 점과 점은 똑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 청록의 얼룩과 번짐, 그를 둘러싼 테두리의 농도와 질감은 역동적인 리듬감으로 각자의 생태계를 꾸리고 있다. 결국 그간의 길고 긴 여정도 어쩌지 못한 절절한 사연 하나 얹어 세상에 나온 ‘무제’의 추정가는 16억∼25억원이다. 이번 경매 최고가로 나왔다.

‘무제’ 외에도 이번 경매에는 김환기의 ‘무제’가 두 점 더 나온다. 그가 오래도록 연구하고 집중한 ‘십자구도’를 색·공간·역동성 등에서 정점으로 끌어올린 ‘무제’(1969)가 추정가 2억 5000만∼4억원에 새 주인을 찾는다. 종이에 그린 유화 같은 맛을 내는 과슈 작품으로 추정가 2000만∼4000만원을 붙인 ‘무제’(1961)와 같이 출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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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부문을 이끄는 대가들은 이번에도 시선을 붙드는 작품으로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천경자가 그린 ‘여인’(1977)이 추정가 4억∼7억원을 호가하며 나선다. 다만 이번 작품은 옆 모습을 담은 여인상이다. 전체적으로 붉은 톤이 캔버스를 붙든 그림은 최소한의 장식으로 여인의 얼굴선을 강조한 것이 특징이다. 어머니와 아들을 중심에 두고 까치·나무·달·해·집 등 좋아하는 소재를 다 담은 장욱진의 ‘풍경’(1986)은 1억 3000만∼1억 8000만원, 어느 봄날 여인들이 들녘에 주저앉아 나물뿌리 캐 올리는 모습을 애잔하게 잡아낸 박수근의 ‘나물 캐는 소녀’(1961)는 3억∼5억원에 주인 찾기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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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고 초상화가가 그린 ‘고종어진’

고미술품 중에서 단연 눈길을 끄는 작품은 석지 채용신(1850∼1941)이 그린 ‘고종황제어진’(1920)이다. 채용신은 조선 말기 최고의 초상화가로 꼽힌다. 용좌에 앉은 곤룡포 차림의 고종 상체를 정면에서 잡아낸 초상화는 고종이 승하한 이듬해에 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밤낮으로 고종을 기리던 간재 전우(1841∼1922)에게 채용신이 그려준 것으로 역사는 기록한다. 채용신이 그렸던 다른 초상화보다 비교적 가벼운 톤으로 회화적인 맛을 살린 것이 특징. 추정가는 미리 공개하지 않았다. 다만 지난해 6월 서울옥션 경매에서 채용신의 다른 작품인 ‘곽동원 초상화’가 치열한 경합 끝에 시작가의 5배에 달하는 가격에 낙찰됐던 터. 그런 만큼 ‘고종황제어진’에 대한 기대치는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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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서 돌아오지 못하고 오래 머물렀던 단원 김홍도(1745∼?)의 ‘화첩’(1786)이 극적인 귀환신고를 할지도 관심거리다. 최근 국내 컬렉터가 일본인이 소장하던 것을 구입해 이번 경매에 출품했다. 마흔두 살의 김홍도가 그린 산수인물화 4점과 화조화 6점 등 총 10점으로 꾸린 ‘화첩’은 표지에 ‘예원청상’(藝苑淸賞)이라고 적었다. 지금껏 제작연도가 밝혀진 김홍도의 작품 중 낙관으로 ‘단원’을 쓴 가장 이른 시기의 작품이다. 이즈음부터 김홍도는 스승 강세황에게서 받은 ‘단원’이란 낙관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고, ‘화첩’의 10점 모두에 ‘단원’을 표기했다. 30대의 예리한 필선이 이후 50대에 보이는 완숙미와 절묘하게 결합했다고 평가받는 ‘화첩’의 추정가는 4억∼10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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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10m에 달하는 ‘조선통신사행렬도’도 고미술품 러시에 줄을 댔다. 1748년의 무진통신사행을 그렸다고 추정하는 행렬도다. 한쪽에선 악기를 연주하거나 가마를 든 인물들이 긴 줄을 따르고 또 한쪽에선 싸우고 도둑질하는 인물 등이 뒤섞여 이룬, 완결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영국 대영박물관에도 비슷한 행렬도가 한 점 있다. ‘1748년 조선통신사행렬회권’다. ‘조선통신사행렬도’ 역시 이와 같은 시기에 제작한 것으로 보고 있다. 추정가 1억 5000만∼3억원을 달고 새 주인의 낙점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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