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민폐 군인’에서 63년 만에 ‘순직 군인’으로


[취재후] ‘민폐 군인’에서 63년 만에 ‘순직 군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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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김포 출신 평범한 농민의 아들이었던 고상덕 씨는 1965년 9월 3일 논산훈련소에 입대했다. 그리고 이튿날 숨졌다. 9월 6일 고 씨의 아버지는 논에서 일을 하다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바지에 흙이 잔뜩 묻은 채 “지금 바로 논산에 가야 한다.”며 출발했다. 큰 사위와 동네 이장이 동했했다. 논산훈련소까지 이틀이 걸렸다.

“왜 환자를 군대에 보냈냐?”

아들은 이미 땅에 묻힌 상태였다. 소위 한 명이 ‘심장마비’로 숨졌다고 말했다. 소위는 아버지에게 “왜 아픈 환자를 군대에 보내 민폐를 끼치냐.”고 호통을 쳤다. 상사 한 명은 “저 뒤에 묻었으니 파 가려면 파 가라.”고 말했다. 하지만 위치를 알려주진 않았다.

9남매 중 첫째를 잃은 어머니는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몇 해 못가서 숨졌다. 장남과 부인을 잃은 아버지는 술에 의지하며 제 정신이 아닌채로 살다 저 세상으로 갔다. 큰 형이자 큰 오빠를 잃고, 거기에 아버지 어머니까지 잃고 나머지 8남매가 모였다. 막내 고금순 씨는 “너무 억울해서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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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고상덕 씨 동생 고상회, 고금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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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남매는 2003년 국방부 문을 두드렸다. 고상덕 씨의 사망 관련 기록을 요구했다. 국방부는 거부했다. 아무리 애원해도 국방부는 단호했다. 그러던 중 아들 중에 가장 막내였던 고상회 씨가 국방부 내부 직원 중 한명과 줄이 닿았다. 그 덕에 큰 형이 훈련소에 있을 때 같은 내무반에 있었던 동료 5명의 이름과 군 입대 당시 주소지를 알아냈다.

8남매가 각각 역할을 나눠 5명의 행적을 쫓기 시작했다. 동사무소 문턱이 닳도록 드나 들었다. 고상회 씨는 “1명의 현재 소재를 알아내는데 1년씩 걸렸다.”고 말했다. 동기 5명을 만나 형의 사망 원인을 탐문했다. 다들 처음에는 주저했지만 조금씩 털어놓기 시작했다. 공통점이 있었다. “폭행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5명이 모두 지목하는 사람이 있었다. 당시 선임하사였던 안OO씨였다.

추적 6년만에 찾은 구타 가해자

8남매는 이제 안씨의 행방을 쫓기 시작했다. 2009년 경기도 수원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안 씨의 집에서 중년의 여성이 나왔다. 막내딸 고금순 씨는 “혹시 안00 씨 여기 사느냐?”고 물었다. 부인은 “그런 사람 여기 안산다.”고 말했다. 이상했다. 하지만 계속해서 안 씨 집 앞에서 열흘을 잠복했다. 인근 주민에게도 탐문했다. 어느 날 한 주민이 “저기 저 사람이 안OO씨다”고 알려줬다. 막내 아들 고상회 씨는 안 씨를 붙잡고 “혹시 안OO씨냐?”고 물었더니 “그렇다.”면서 “무슨 일이냐?”고 되물었다. “혹시 고상덕 씨라고 아느냐? 군대에서 같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안 씨는 당황했다. 그리고 내뱉은 첫 마디는 이랬다. “내가 안때렸어. 때린 사람은 내가 아니라니까.” 8남매가 생업을 팽개치고 큰 형, 큰 오빠의 죽음을 쫓은지 6년 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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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고상덕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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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9월 3일, 고상덕 씨 논산훈련소 입대한 다음날
선임하사 안00 씨는 고 씨 등 입소대대 5중대 전원을 집합시켰다.
안 씨는 군기를 잡는다며 내무반 침상 위에 집합한 신병들을
한 명씩 차례로 때리기 시작했다.
가슴을 맞은 고상덕 씨가 쓰러진 뒤 곧 숨졌고,
군은 고 씨를 야산에 묻은 뒤 가족에게 전보를 보냈다.

8남매는 6년간의 추적끝에 파악된 이같은 내용과 관련 자료를 2009년 당시 활동중이던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 넘겼다. 진상규명위는 심사 후 고상덕씨를 순직 처리하라고 국방부에 권고했다. 가해자인 안00 씨에 대한 처벌은 어떻게 될지 물었다. 이에대해 군 관계자는 2009년 이미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할 수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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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명, 9년 만에 순직 인정

지난 4일 국방부는 고상덕 씨를 포함해 90명을 순직으로 인정했다고 발표했다. 모두 2009년 진상규명위원회가 활동을 종료하면서 ‘순직 권고’한 사례들이었다. 계급별로는 장교 6명, 부사관 5명, 병사 79명이었다. 원래 자살 69명, 변사 6명, 병사 6명, 일반사망 5명, 사고사 4명이라는 숫자속에 남아 있던 사람들이다. ‘순직 권고’에서 ‘순직 확정’까지 9년이 걸렸다. 고상덕 씨의 경우 숨진지 63년만에 순직으로 인정됐는데 이보다 10년 더 오래된, 1955년 사망자 중에서도 순직 결정된 사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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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창군 이래 지난해 말까지 군 복무중 전투나 훈련, 공무가 아닌 형태로 죽은 군인의 수는 약 3만6천 명이다. 흔히 말하는 ‘개죽음’, 아무런 명예나 보상없이 숨진 군인이 1년에 514명이다. 국방부는 앞으로 3만 6천건에 대한 전수 조사를 실시해 순직 여부를 재조사하겠다는 계획이다.

[연관 기사] “숨진 지 73년 만에”…국방부 90명 순직 인정

이철호기자 (manjeok@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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