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 ‘反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은 안 된다


[전문기자 칼럼] '反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은 안 된다

정권 바뀌고 임명된 좌파 관장

산업화보다 민주화 비중 두고 ‘1919년 건국’ 강조라면 몰라도 대한민국 정통성 훼손은 곤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취임 후 첫 번째 맞은 2008년 8·15 경축사에서 “대한민국 건국 후 60년은 성공·발전·기적의 역사였다”며 “이를 보여주는 국립 현대사박물관을 만들겠다”고 밝혔을 때 보수 우파 일각에서는 우려 목소리가 나왔다. 한국 현대사의 서술과 교육을 놓고 좌·우파의 치열한 ‘역사 전쟁’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국가가 현대사박물관을 세운 다음 좌파가 정권을 잡게 되면 심각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좌편향, 나아가 대한민국의 역사적 기반을 훼손하는 현대사박물관이 서울 한복판에 등장할 수 있다는 걱정은 근거가 있었다. 이에 대해 국립 현대사박물관이 들어서면 아무리 좌파라도 대한민국의 역사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방향으로 바꿀 수는 없을 것이라는 반론도 있었다. 10년 만의 정권 탈환을 보여주는 가시적 성과물이 필요했던 이명박 정부는 계획을 그대로 추진했고 임기가 끝날 무렵인 2012년 12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지난 5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좌편향 현대사박물관’ 우려가 현실화될지 기로에 섰다. 진보 좌파 역사학자 중에서도 강성으로 꼽히는 주진오 상명대 교수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새 관장으로 임명됐다. 주 관장은 취임 직후 언론 인터뷰에서 현재의 전시에 불만을 표시하면서 우리 근현대사의 어두운 부분을 반영하도록 바꾸어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주진오 신임 관장을 비롯한 일부 인사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현재 전시가 편향됐다고 주장한다. 진보 좌파 시각에서는 만족스럽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국민적 공감대에 입각해야 할 교과서적 관점에서 보면 비교적 균형 잡혀 있다고 하는 것이 온당하다. 지난 9년 박물관을 만들고 이끌고 도와온 사람들은 때로 보수 우파의 불만을 사면서까지 너무 치우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선입관을 버리고 전시를 차분히 검토한다면 우리 근현대사의 시기마다 당면했던 민족적 과제를 달성하기 위한 고투(苦鬪)가 상당히 충실하게 표현됐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박물관을 바꾸고 싶다면 ‘대한민국 역사’의 틀 속에서 무게 중심을 옮기는 것은 가능하다. 산업화보다 민주화를, ‘1948년 건국론’보다 ‘1919년 건국론’을 강조하고 비중을 두는 것은 문제 되지 않을 것이다. 그 정도는 정권 교체의 전리품으로 이해될 수 있다. 박물관 운영을 도와온 한 중립적 인사는 “산업화 박물관에서 민주화 박물관으로 바뀌는 것 아니냐”고 전망했다. 그러나 대한민국 수립의 정당성을 부정·왜곡·폄하하거나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통성을 훼손하는 것은 곤란하다. 좌편향을 넘어 ‘반(反)대한민국’이란 비판을 받았던 검정 국사 교과서의 잘못된 현대사 인식과 서술이 국립 현대사박물관에서 되풀이될 수는 없다.

새로운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모습은 주진오 관장이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내년 ‘4·3 전시회’와 바로 이어지는 ‘정부 수립 70주년 특별전’, 그리고 상설 전시 교체를 통해 드러날 것이다. 앞의 두 전시는 대한민국의 역사적 위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매우 민감한 소재를 다루게 된다. 논란이 됐던 검정 국사 교과서의 필자인 주 관장은 “대한민국은 38도선 이남의 유일 합법 정부”라고 강력 주장해 대한민국의 국제적 승인에 관한 중대한 사실 인식의 오류를 드러냈고, 거듭되는 지적에도 이런 잘못을 인정하고 바로잡은 적이 없다. 그가 이끄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을 불안해하고 특별히 주목하는 이유이다.

주진오 관장은 “분열과 갈등이 아니라 화합과 통합의 박물관을 만들겠다” “새로운 관점을 강요하지 않고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전시를 선보이겠다”고 말했다. 그에게 내전을 치른 분단국가의 국립 현대사박물관 수장(首長)다운 학문적 전문성, 사려 깊은 성찰, 신중하고 지혜로운 판단을 부탁하고 싶다. 부디 주 관장이 자신의 다짐을 지켜서 반(反)대한민국역사박물관을 만든 인물로 기록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선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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