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오랜 벗… 충성과 의리 상징


인간의 오랜 벗… 충성과 의리 상징

설화·미술·속담 속 ‘개’

‘유화부인이 다섯 되 크기의 알을 낳았는데 금와왕이 개와 돼지에게 주어도 먹지 않았다.’ 기원전 58년 부여에서 일어난 사건을 서술하는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의 이 글은 우리나라에서 개를 사육했다는 최초의 기록이다. 고구려 덕흥리·무용총 벽화에서부터 신라 토우, 김홍도의 풍속화 ‘점심’에까지 등장할 만큼 친근한 존재였던 개는 우리 전통문화에서 충성심과 의리가 강한 충복(忠僕)과 지체가 낮은 비천(卑賤)의 이미지를 함께 지녔다.

‘충복 개’를 상징하는 것으로는 자기 몸을 바쳐 주인을 살렸다는 전북 임실 오수의 설화를 비롯한 ‘의견(義犬) 설화’들이 있다. 의견 설화는 의견비(碑), 개무덤, 개방죽, 개고개 같은 ‘유적’으로도 남아 있어 흥미를 끈다. ‘개는 사흘만 기르면 주인을 알아본다’는 속담처럼 개는 결코 인간을 배신하지 않는다는 뜻일 것이다.

반면 ‘서당개’ ‘사나운 개’ ‘똥개’와 같은 표현으로 온갖 민요와 속담에 보이는 개는 비천함의 상징이기도 했다. ‘야밤중에 우리 임이 오시더라도 짖지 마라’ ‘자장 자장, 검둥개야 짖지 마라’ 같은 민요 구절에선 아무 때나 짖어 은밀한 만남을 방해하거나 곤히 잠든 아기를 깨우는 눈치 없는 훼방꾼이었다.

개는 때때로 이상한 행동을 보임으로써 미래의 심상찮은 일을 암시하는 예언자이기도 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엔 서기 736년 개가 궁성의 고루(鼓樓)에 올라 3일 동안 울었는데, 몇 달 뒤 임금이 승하했다는 기록이 있다. 무속에선 이승과 저승을 연결해 주는 안내자가 개였다. ‘강아지가 이승과 저승 사이 외나무다리를 안내한다’는 것인데, 후각이 발달해서 웬만하면 길을 잃지 않고 잘 찾아간다는 데서 유래했을 것이다.

[유석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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