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력만 봤다, 숨은 실력자들이 빛나기 시작했다


연기력만 봤다, 숨은 실력자들이 빛나기 시작했다

[한겨레] <범죄도시> 강윤성 감독, <슬기로운 감빵생활> 신원호 피디

인기 여부 안가리고 오롯이 ‘연기’로 배우 캐스팅

<범죄도시> ‘청룡영화제’ 조연상 진선규와

<슬기로운…> 박해수, 김성철, 이호철 등

묵묵히 연기해온 배우들 재발견

안판석, 신경수 피디 등도

연극서 잔뼈굵은 배우들 기용 노력

“인기보다 연기 잘하는 배우들이 빛봐야”

지난 24일 ‘38회 청룡영화제’에서 남우조연상을 받은 진선규는 “감사하다, 정말 감사하다. 진짜 감사하다”며 펑펑 울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가족들뿐 아니라 영화 <범죄도시>에서 함께 작업한 강윤성 감독과 윤계상 등 동료 배우들도 눈물을 쏟았다고 한다. 그가 오랫동안 활동해온 대학로 연극판은 또 어떻고.

진선규의 수상에 주변 사람들이 더 기뻐하는 것은 12년 무명생활 끝에 드디어 빛을 봤기 때문이다. 데뷔 이후 관계자들 사이에서 연기력은 인정받았지만, 주로 작은 역할만 주어졌다. 그래도 “연기하는 게 즐거우니까, 묵묵히 하고 있으면 언젠가는 누군가는 봐주겠지”라는 생각으로 성실히 일해온 그의 진가를 <범죄도시>가 알아봐준 것이다.

진선규의 재발견은 <범죄도시> 강윤성 감독이 캐스팅 기준을 오롯이 ‘연기’에 두고 모두한테 오디션을 통한 공평한 기회를 줬기 때문에 가능했다. 강 감독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이미 알려진 사람들이 많이 나오면 관객이 이 이야기를 믿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마동석과 윤계상, 조재윤, 최귀화를 제외하고 모든 배우를 오디션으로 뽑았다”고 말했다. 관계자들도 “투자나 해외 판매를 위해 유명 배우 섭외에 목매는 풍토가 짙은 한국 영화에서 쉽지 않은 선택”이라고 말한다. 그 뚝심 덕분에 김성규, 허동원, 허성태, 하준 등 연기 잘하지만 알려지지 않았던 배우들도 재조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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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을 맡은 박해수. 티브이엔 제공

연기 잘하는 배우한테 더 좋은 기회를 주자는 움직임은 주로 드라마를 중심으로 2~3년 전부터 일기 시작했다. 안판석 피디와 신경수 피디 등이 대표적이다. 연극판을 돌면서 연기 잘하는 배우들을 직접 찾아다녔고 허정도, 윤복인(<풍문으로 들었소>), 정문성(<육룡이 나르샤>) 등이 얼굴을 알렸다. 그러나 여러 조연 역할 중의 일부였다. 그랬던 시도가 최근에는 <범죄도시>처럼 주조연급을 넘어 주연으로까지 옮아가고 있다.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티브이엔)은 ‘원톱’ 주인공 김제혁을 연기하는 박해수뿐만 아니라 교도소 동기들로 나오는 인물들까지 모두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이들로 배치했다. 박해수는 영화와 드라마에서 조연으로 나왔지만 주로 연극에서 활동했고, ‘갈매기’(이호철), ‘법자’(김성철), ‘명교수’(정재성) 등으로 나오는 배우들도 대부분 연극, 뮤지컬 등이 주무대였다. <슬기로운 감빵생활>의 신원호 피디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워낙 등장인물이 많아서 잘 알려지지 않은 배우가 출연하면 구분이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는 있었지만, 인기와 관계없이 작품의 내실을 위해서 캐릭터에 꼭 맞는 배우들로 캐스팅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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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창환(왼쪽부터), 이호철, 이훈진. 티브이엔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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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도시>와 <슬기로운 감빵생활>의 이런 시도는 늘 엇비슷한 역할만 도맡는 조연·단역들한테 연기만 잘하면 새로운 역할을 맡을 수 있고 좋은 배우로 발굴될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한 조연 배우는 “연기는 잘하지만 유명하지 않았던 배우를 과감하게 기용하고 그 배우한테서 새 얼굴을 발굴해준 것이 내가 다 고마웠다”고 말했다. 진선규는 드라마와 영화 등에서 주로 선한 인물을 연기했는데, 강 감독은 그 얼굴 속에서 위성락이라는 밑도 끝도 없이 도끼를 휘두르는 악역을 발견했다.

새로운 얼굴은 피디들한테 영감을 주기도 한다. 신 피디는 “오디션을 보면서 이런 캐릭터에 이런 연기를 하는 배우들이 있었구나, 발견하는 재미가 있었고, 그분들이 기대를 뛰어넘는 연기를 보여주면서 (감이 잘 잡히지 않았던) 극중 캐릭터를 다잡기도 했다”고 말했다.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 이규형이 맡은 마약에 찌든 재벌 2세와, 극중 김제혁한테 교도소 생활을 끊임없이 설명해주는 말 많은 ‘법자’(‘법무부의 자식’이라는 어려서부터 교도소를 자주 들락날락 한 사람을 일컫는다) 역할은 오디션 당시 배우의 연기를 보며 제작진이 캐릭터를 완성한 경우다. 이런 노력은 결국 작품의 질을 높이고, 나아가 한국 드라마와 영화 시장을 발전시키는 도약대가 된다. <범죄도시>는 유명하지 않지만 연기 잘하는 배우들이 진짜 조폭, 형사 같은 느낌을 주면서 몰입도를 높였고, 그것이 영화 인기의 요인이 됐다. <슬기로운 감빵생활> 역시 실제로 교도소에 있는 사람들 같은 사실감을 더한다. 신 피디도 “시청자가 잘 모르는 배우이면 실제 나이와 성격 등을 가늠할 수 없기 때문에 극에 더 몰입하는 효과를 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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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최귀화(오른쪽)와 함께 좋은 연기를 보여준 홍기준(왼쪽), 허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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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와 영화 관계자들은 이런 좋은 시도가 이어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제작진의 의지가 있어야 한다. 강 감독과 신 피디는 오디션만 보는 게 아니라 작품마다 좋은 얼굴을 찾기 위해 발품을 많이 판다. 강 감독은 아무리 바빠도 한달에 평균 두번 이상은 연극을 보러 다닌다. 신 피디도 작가들과 함께 재미있다고 소문난 연극이나, 좋다는 작품은 최대한 보려고 노력한다. 박해수도 <남자충동>을 보고 선택했고, 이규형은 드라마 <비밀의 숲>(티브이엔) 방영 전에 연극 <날 보러 와요> 등을 보고 캐스팅했다. 강 감독은 “충무로를 위해서라도 새로운 배우들이 나와줘야 한다”며 “유명하고 연기 잘하는 배우들도 많지만, 대학로 등에서 오랫동안 빼어난 연기를 해온 분들 중에서 아직 빛을 못 본 분들이 너무 많다. 앞으로도 그런 분들과 작업하고 싶다”고 말했다. 신 피디는 “<슬기로운 감빵생활>이 전작인 ‘응답하라’ 시리즈만큼 호응받지 못하더라도, 이 드라마에 출연한 연기 잘하는 배우들이 더 좋은 자리를 얻게 되고, 시청자들을 만나는 기회가 더 많이 생겼으면 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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