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케말리즘의 위기


전성기에는 터키와 발칸반도, 헝가리, 북아프리카, 아라비아반도 남부에 걸친 광활한 영토를 아우르던 오스만제국은 19세기 들어 그리스 독립전쟁에서 패하면서 결정적으로 쇠퇴했다. 개혁주의 관료들을 중심으로 근대식 의회 제도와 헌법을 도입하는 탄지마트 개혁을 추진했지만 실패했고, 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 편에 가담했다가 제국이 공중분해될 위기에 처했다.

실패한 탄지마트 개혁을 계승한 인물이 ‘터키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1881~1938)다. 육군 장교이던 아타튀르크는 1차 세계대전 당시인 1915년 갈리폴리 전투에서 25만명의 영국·프랑스 연합군을 패퇴시키며 영웅으로 떠올랐다. 1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오스만제국을 대신해 터키공화국을 수립하고 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터키의 모든 지폐에 아타튀르크의 초상이 그려져 있고, 회사나 노점에도 초상화가 걸려 있을 정도로 인기는 여전하다. 그의 건국 이념인 ‘케말리즘’은 세속주의와 공화주의를 통한 근대화가 핵심이다. 정교일치 체제를 폐지해 중동과의 관계를 끊고 열강의 간섭에서 자유로운 서구형 근대국가를 목표로 내세웠다. 터키판 ‘탈아입구(脫亞入歐)’ 노선인 셈이다.

이 케말리즘이 위기에 처했다. 친이슬람 정책을 펴온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24일 치러진 대통령 선거와 총선에서 승리한 것이다. 지난해 개헌으로 에르도안 대통령은 2030년 이후까지 집권할 수 있게 돼 ‘21세기 술탄’으로 등극했다는 말까지 나온다.

2002년 집권한 에르도안은 이슬람식 교육을 부활시키고 저소득층을 위한 복지를 대폭 늘리면서 국민 절대다수인 무슬림의 지지를 얻어왔다. 터키에는 이슬람식 학교가 급증했고, 금지됐던 히잡을 쓴 여성들을 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에르도안의 인기는 2016년 19년 만에 발생한 터키 군부의 쿠데타도 무산시켰다. 터키 군부는 그간 케말리즘에서 벗어나는 정책을 펴는 정권이 등장할 때마다 쿠데타를 일으켜 교체했지만 군부마저 에르도안 앞에 무릎을 꿇은 셈이다.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교량’인 터키를 지탱해온 케말리즘의 종언이 세계 질서에 어떤 후과를 몰고올지 불안해진다.

<서의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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