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탈리 칼럼] 고백하세요, 그러면 다 용서받습니다


[아탈리 칼럼] 고백하세요, 그러면 다 용서받습니다

모르는 이들에게 SNS를 통해

자발적으로 고백하는 게 유행

고백은 비밀을 말해도 될 만한

신뢰·우정의 관계 속에서 해야

처음에는 수만 명, 나중에는 수백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그 구성원의 사생활을 낱낱이 살피고 싶어하는 커뮤니티(공동체)에 제 발로 걸어갔다. 이들은 자신에 대한 모든 정보를, 심지어 가장 사적인 정보까지 제 손으로 이 커뮤니티에 제공한다. 정보를 내놓은 대가로 이들 각자가 얻는 것은 어떻게 처신하는 게 최선인지, 가진 돈을 어디에 써야 제일 좋을지, 인생을 더 잘 살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무엇인지에 대한 조언이다. 더할 수 없이 고통스러운 문제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비밀을 공개하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돈까지 내놓는 사람들 덕택에 커뮤니티 주인의 재산은 차곡차곡 불어난다.

여기까지 읽은 독자들이 짐작하는 것과 달리 페이스북에 대한 얘기를 하는 게 아니다. 2000년 전부터 독실한 가톨릭 신자들의 의식으로 자리 잡은 고해성사에 대한 이야기다. 신자들은 신부들이 요구하는 대로 순종함으로써 사후에 선택받은 자가 되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희망을 키우고자 한다. 그리고 때로는 천국에 안착할 가능성을 더욱 높이기 위해 고해신부들의 조언에 따라 적지 않은 재산을 성당에 헌납하기도 한다.

페이스북과 가톨릭 교회의 유사성은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위안을 얻는 대가로 제삼자에게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는 일이 비단 성당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모든 사회 조직에 빠지지 않고 반드시 등장하는 요소다.

앞에서 기술한 내용은 수천~수백만의 상담 희망자들에게 정신분석이 제안하는 것과 매우 정확하게 일치한다. 이들도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약속에 거금을 지불한다. 그 약속은 지금 여기에서의 더 나은 삶, 즉 지상의 천국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런 과정에서 정신분석가들의 재산도 불어난다.

중앙일보

아탈리 칼럼 6/15

전체주의 체제도 제 구성원을 다스릴 목적으로 같은 방식을 활용하는데, 이 경우에는 왜곡과 강요라는 특징이 나타난다. 조직은 그 구성원들이 정당의 이름으로, 또는 국가의 이름으로 또는 그 외의 어떤 초월적인 개체의 이름으로 기꺼이 감사하며 받아들이는 강제 자백과 거대 수용소, 그리고 유죄판결을 체제 유지 수단으로 활용한다.

‘사회관계망(social networks)’은 인간이 자기도취와 속죄를 전시하는 가운데 비밀을 털어놓으며 고백하는 능력이 다른 형태로 구현된 것일 뿐이다. 이제 사람들은 위의 다른 사례들에서 보는 것만큼이나 허황된 약속의 대가로, 서비스 사용자들을 고독 속에 버려두지 않는다는 데이터베이스에 대고 자신의 모든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에 자신의 가장 사적인 정보를 올리는 사람도 고해성사하거나 남에게 속사정을 털어놓는 사람만큼 기쁨을 느끼고 위안을 얻는다. 그는 이제 더는 혼자가 아니다. 자신과 비밀을 나눈 상대는 그 즉시 고독에 함께 맞서 싸울 방패가 되어주기도 한다.

그런데 취합된 고백을 활용하는 방식은 제각기 다르다. 예를 들면, 성당에는 모든 독실한 신자들의 고백을 통합하는 데이터베이스가 없다(비슷한 종류의 문서철이 있기는 하다). 마찬가지로 전 세계 정신분석가들이 수행한 상담 파일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여기에도 그런 것이 있기는 하지만, 부분적인 정보만 담겨 있다). 이 두 가지 사례에서 고백은 고해소나 정신분석 상담실에 공개되지 않는 상태로 남는다. 독재 정당들의 경우, 이들은 대량의 정보를 주로 수작업 방식을 이용해 시스템이 아닌 사람이 직접 간추린 형태로 보유했다.

사회관계망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새로운 면은 아마도 이런 것이 아닐까. 사회관계망은 세상에 돌아다니는 내밀한 이야기들을 다 같이 공유하는 형태로 놓아둔다. 기술이 있는 사람들이 그것을 발판으로 권력과 부를 형성해낼 수 있도록 말이다.

진정한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사적 테두리를 벗어난 영역에서 감정을 분출하면서 속사정을 고백하거나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려는 부질없는 욕망에서 벗어나야 한다. 고백과 술회는 다른 사람에 대한 최고의 신뢰·우정·사랑의 표시로 남아야 할 것이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비하하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모르는 사람들은 그렇게 나온 남의 이야기를 언제든 정치적인 목적으로 가져다 쓸 수 있다.

근심을 자신의 마음속에 간직할 방법을 깨닫거나, 무덤까지 가져갈 비밀을 털어놓아도 정말 괜찮을 만한 누군가를 찾고 만나는, 이런 것들이 가장 높은 수준의 자기 수양과 진정한 자유의 조건이 아니겠는가.

자크 아탈리 아탈리 에아소시에 대표·플래닛 파이낸스 회장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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