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행 열흘 앞… ‘발등의 불’만 끈 주52시간


다음 달부터 주 52시간 적용을 받는 근로시간 단축이 사실상 내년 1월로 미뤄졌다. 300인 이상 사업장 대상 시행을 열흘쯤 앞둔 가운데 현장 혼란 우려가 커지자, 정부가 주 52시간 법 규정을 지키지 않더라도 단속과 처벌을 6개월 유예하기로 한 것이다.

더불어민주당과 정부, 청와대는 20일 고위 당정청(黨政靑) 회의를 열고 “노동시간 단축으로 인한 충격을 최소화하고 현장 연착륙을 위해 6개월간 단속과 처벌을 유예하기로 뜻을 모았다”고 밝혔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이날 “경총(한국경영자총협회)이 근로시간 단축에 대해 6개월 동안 단속과 처벌 유예 제안을 했고 검토할 가치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산업 현장과 학계에선 “당초 계획대로 단속을 강행할 경우 혼란 등 역풍을 우려해 임시 처방으로 급한 불만 끈 셈”이라며 “더 늦기 전에 나온 게 그나마 다행”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에 따라 고용노동부는 다음 달부터 주 52시간 근로가 적용되는 300인 이상 사업장에 대해 최장 6개월 시정 기간을 주기로 했다. 고용부는 지난 19일 경총이 “6개월 계도 기간을 달라”는 건의문을 냈을 때 “6개월 더 있어도 달라질 게 없다”며 사실상 거부했다. 그러다 하루 만에 입장을 바꾼 것이다. 지난 7일엔 현장 혼란 우려가 있다는 언론 보도에 대해 김영주 고용부 장관이 “300인 이상 사업장에서 (먼저 시행)하는데 준비가 충분히 돼 있다”고 말해 논란을 불렀다.

정부가 이처럼 6개월 처벌 유예를 결정한 것은 결국 국회가 졸속 입법을 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 근로시간이 세계 최장 수준이라 근로시간을 줄이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었지만 부작용을 최소화할 대책도 같이 입법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올 2월 말 국회를 통과한 근로시간 단축 법안은 노동계 출신 의원들 주도로 급작스럽게 만들어졌다. 당시 여야 합의안을 마련한 국회 환경노동위 고용노동소위는 11명 의원 가운데 5명이 노조 간부 출신 의원이었고 기업인 출신은 한 명도 없었다.

소위는 당시 “근로시간 단축 충격을 줄이기 위해선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을 현행 2주·3개월에서 6개월·1년으로 늘려야 한다”는 재계 요구는 사실상 묵살한 반면 노동계 요구는 받아들여 연장 근로 제한을 받지 않는 특례 업종을 26개에서 5개로 대폭 축소했다.

이처럼 법 개정 직후부터 부작용이 우려됐지만 정부는 4개월여 동안 탄력근로제 확대 요구에 대해선 “개정법안 부칙에 규정된 2022년 시한 전에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며 소극적으로 대응했고, 노선버스와 정보통신기술(ICT) 등 특례에서 제외되는 업종에 대한 대책도 제대로 내놓지 못했다.

이후 근로시간 단축으로 임금이 줄어들 근로자들 우려와, 추가 채용 인건비 부담에 대한 사용자들의 호소가 잇따르자 지난 5월 정부는 기업·근로자에 대한 지원금을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노동시간 단축 현장 안착 지원 대책’을 발표했다.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문제가 불거지면 땜질 대책을 내놓기를 되풀이한 것이다. 여기에 시행 한 달을 앞둔 이달 초까지도 업무상 지인과 식사가 근로시간에 포함되는지 여부 등 근로시간 산정에 대한 지침조차 내놓지 못해 현장 혼란을 더욱 키웠다.

정부는 지난 11일에야 직장 내 회식과 거래처 접대 등에 관한 기준과 사례 등을 담은 ‘근로시간 단축 가이드라인’을 내놓았지만, 시기적으로 너무 늦었고 내용도 노사 협의로 결정해야 할 사안이 많아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런 가운데 지방의 버스 회사들은 근로시간 단축을 앞두고 노선을 줄이고, IT 등 업계에선 정부에 우려 목소리를 전하는 등 제도 시행을 열흘가량 앞둔 시점에서 현장 혼란은 점점 커져갔다.

20일 당정청이 근로시간 위반 단속에 6개월 유예기간을 두기로 한 것에 대해 경영계 관계자는 “최근 고용 상황이 심각한 상황에서 정부가 근로시간 단축의 채용 연계를 높이기 위해 대기업 채용 시기인 겨울까지 시간을 번 셈”이라고 말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 통과 직후 내놓았어야 할 가이드라인을 뒤늦게 내놓는 등 현장에서 무엇을 애로 사항으로 생각하는지, 어떤 부분을 보완해야 하는지에 대해 정부가 고민한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며 “기업 준비 부족으로 계도 기간을 준다고 하지만 정부의 준비 부족 때문에 빚어진 결과”라고 말했다. 조성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근로시간의 개념 자체도 모호하고, 근로시간 단축에 따라 바뀌어야 할 근무·인사 관리 관행도 많다”며 “앞으로 6개월간 예상치 못했던 문제들이 나올 텐데 이를 잘 살펴 보완적 입법을 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곽수근 기자;이기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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