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에 굶주린 전사들… 경기력 200% 끌어올려 전세계 놀라게 하겠다”


[평창 D-41]

히딩크의 길을 가는 아이스하키 대표팀 백지선 감독

– 패배자에서 戰士로

3년 전엔 스틱만 쥔 방랑자들… 2017년엔 당당한 세계 16강

백지선 감독 “지금 우리 선수들 세계 최정상급 경기 할 수 있다”

– 히딩크의 길을 가다

대표 선발에 학연·지연 타파, 파워 키워라… 지옥의 체력훈련

센 팀과 정면대결해 내공 쌓아

“2014년 한국 선수들은 스틱만 쥐었을 뿐 뭘 어떻게 할지 잘 모르는 방랑자 같았죠. 지금 보세요. 강팀에게 이기려고 덤벼드는 ‘진짜 전사(Warrior)’가 됐어요.”
백지선(50)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감독은 29일 오전 서울 강남에서 열린 국가대표팀 유니폼 공개 행사에 참석한 선수들을 자랑스럽다는 듯 흐뭇하게 바라봤다.

2017년, 한국 남자 아이스하키는 이전에 꿈도 못 꾸던 성과를 이뤘다. 디비전 1 그룹 A(사실상 세계2부리그) 선수권대회에서 2위를 차지하며 세계 16강만 겨루는 1부(톱 디비전)로 승격하는 기적을 연출했다. 이달 초 러시아에서 치른 채널원 컵 대회에서는 세계 1위 팀인 캐나다를 비롯해 스웨덴(3위), 핀란드(4위) 등 초강국들과 한판 대결을 벌였다. 몇 년 전이었다면 10점 차로 지느냐, 20점 차로 지느냐가 문제일 경기였다.

백 감독은 대회를 앞두고 선수들을 불러 모아 자신들이 여름 체력훈련을 통해 ‘식스팩(six pack)’을 새긴 모습과 세계 최고 스타 알렉스 오베츠킨(러시아)의 상반신 사진을 보여주며 한마디 던졌다. “오베츠킨 배 좀 봐. 살짝 나왔지? 너희가 뒤질 게 있어? 우리가 하나가 되면 뭐든지 가능해. 해보는 거야!”

한국은 비록 3경기 모두 패했지만 매 경기 골을 터뜨렸고, 어느 대목에선 대등한 경기력을 보여 팬들을 놀라게 했다.

백 감독이 처음 왔을 때만 해도 한국 아이스하키 대표팀은 ‘루저(loser)’의 집합소 같았다. 선수들이 패배를 당연한 걸로 받아들였다. 지금은 다르다. 백 감독은 “이제 우리 선수들은 싸움에서 이기길 갈망하는 진정한 전사가 됐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백지선 감독의 아이스하키팀은 2002년 월드컵 때 4강 신화를 만든 거스 히딩크 감독의 축구대표팀과 놀랍도록 닮았다. 백 감독은 국가대표 선발전 때 소속팀 유니폼 대신 등 번호만 새긴 훈련 유니폼을 입혀 각 포지션에 필요한 선수를 백지상태에서 골랐다. 마치 히딩크가 대표를 뽑을 때 국내 무대 이름값, 주위 평가를 무시하고 실력만으로 뽑은 것과 비슷했다. 백 감독 이전의 아이스하키는 학교별 나눠 먹기 대표 선발이 기본이었다.

조선일보

“우리 기술로는 안 돼”라며 국제무대 패배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였던 국내 아이스하키인의 고정관념을 뒤집은 것도 백 감독이었다. 그가 “한국 선수들의 기술과 스피드는 놀라운 수준이다. 문제는 체력”이라고 했을 때 국내에선 “말이 되는 이야기냐”는 반응이 나왔다. 백 감독은 NHL의 전문 체력 단련 시스템을 대표팀에 도입해 포지션별로 필요한 세부 근육까지 별도로 단련시키는 방법을 택했다. 대표선수들이 여름에 집중적으로 소화하는 이 ‘지옥훈련’은 히딩크가 부임 초기 자존심 강한 대표 선수들에게 왕복달리기를 수십, 수백 번 시켜 그라운드에 쓰러지게 한 ‘공포의 삑삑이’훈련을 떠올리게 한다.

2002 대표팀이 월드컵을 앞두고 프랑스, 체코 , 잉글랜드 등 강팀과 평가전에서 패배하며 점점 강해진 것처럼 한국 아이스하키팀도 강팀과 대결을 통해 ‘내공’을 쌓아가고 있다. 국내 프로팀과 협의해 선수들을 전세 내듯 차출해 집중 조련시킨 것도 비슷하다. 지금 한국 아이스하키는 불과 1년 전과도 비교할 수 없는 팀이다.

“물에 들어가기 전엔 얼마나 깊은지, 얼마나 차가운지 발가락을 먼저 대 본다. 채널원컵은 세계 강호들이 정말 어느 정도 센지, 살짝 발가락을 대 본 대회였다. 이제 올림픽이다.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선수들 스스로 느꼈을 것이다.”

대표팀은 1월 7일부터 올림픽 전까지 진천선수촌에서 마지막 담금질에 나선다. 선수들이 올림픽 때 마지막 젖 먹던 힘까지 쏟아 붓기 위해 4년간 해온 것들을 총정리하는 시간이다. 백 감독은 “지금의 한국 선수들은 세계 최정상급 수준의 경기를 할 수 있다. 그걸 60분 내내 펼칠 수 있도록 준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히딩크 감독은 월드컵 50일을 앞두고 “매일 1%씩 끌어올려 월드컵 개막 때 100%를 만들겠다”고 했다. 올림픽을 40여일 앞둔 백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지금 우리 선수들은 이미 100%다. 매일 조금씩 나아진다면, 올림픽 때는 200%가 될 것이다. 우리를 우습게 보던 전 세계가 올림픽을 보고 놀라게 될 것이다.”

[강호철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mments 0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게시물 선택
글+이미지
텍스트 에디터 사용가능
이미지
포토, GI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