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타던 6남매, 엄마 목 7㎝ 종양 없어지자 “어꾼 쯔라은”


속타던 6남매, 엄마 목 7㎝ 종양 없어지자

메디컬 원아시아 2017 ◆

한국 의료진을 태운 빨간 버스가 병원 입구로 들어서는 오전 8시, 간이 대기실을 가득 메운 200여 명의 눈길이 일제히 버스로 쏠렸다. 한동안 적막감이 감돌았을 수술실은 금세 한국에서 공수해 온 수술 도구들과 수많은 의약품, 활기찬 의료진들의 움직임과 부산 사투리, 서울말로 가득 찼다. 쏟아지는 영어 질문에 긴장한 듯 캄보디아 현지 간호사들도 분주하게 움직였다. 여기는 10년 전 한국인 선교사들이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에 세운 헤브론메디컬센터, 11월 5일부터 11일까지 6박7일간 치열하게 싸웠던 ‘블루크로스 의료봉사단’의 베이스캠프다.

“자, 일하자! 환자 들여보내라.”

김문철 상계백병원 마취과 교수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오전에 4명 오후에 2명, 고요했던 헤브론병원 수술실은 바쁘게 환자들을 맞았다. 수혈이 불가능하고 익숙하게 쓰던 장비도 없는 상황에서 조금 긴장한 듯 보였던 의료진은 바로 현장에 적응해 신바람나게 수술을 이어갔다. “수술 부위를 압구정 성형외과 원장님이 봉합해주다니, 여기 환자들은 복도 많다. 상처 없이 곱게 아물겠다”는 농담도 나왔다.

장여구 서울백병원 외과 교수는 “이번 의료봉사단장이신 김상효 부산백병원 외과 교수님은 수십 년 동안 갑상선 수술만 1만건, 다른 수술까지 합치면 2만건을 집도하신 분”이라며 “우리 봉사단의 경력을 모두 합치니 250년이 넘더라. 더구나 헤브론병원은 저나 김 단장님은 8년째, 간호사 맏언니인 정재원 간호사(서울백병원 수술실)도 네 번째 오는 곳이라 여기 돌아가는 시스템도 잘 안다”고 설명했다.

신연명 고신대 복음병원 외과 교수는 8세 소년 부다 쏙 후에이의 오른쪽 서혜부 탈장수술을 금세 끝냈다. 후에이의 어머니는 어렸을 때부터 아들의 탈장 증세를 알았지만 돈이 없어 몇 년간 방치할 수밖에 없었다며 연신 감사 인사를 했다. 신 교수는 “세상에 간단한 수술은 없다”면서도 “한국이라면 당일 퇴원을 시키겠지만 의사를 만나기 어려운 이곳 특성상 하루나 이틀 경과를 지켜보고 퇴원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아픈 내색도 없이 이틀간 씩씩하게 병원에 있던 후에이는 수줍게 웃으며 “어꾼 쯔라은”(감사합니다라는 뜻의 캄보디아어)이라는 말을 남기고 집으로 돌아갔다. 아버지가 운전하는 오토바이 뒷좌석에 후에이를 두 팔로 안은 어머니가 타고, 흙먼지라도 먹을세라 커다란 초록색 천으로 아들의 얼굴과 상반신을 덮은 채였다. 세 가족은 그 자세로 2~3시간을 달려야 하는 베트남 쪽 1번 국도 인근 마을 끼은스와이에 있는 집으로 돌아갔다.

맨발로 헤브론병원을 천방지축 휘젓고 다니던 6남매도 한국 의료진의 덕을 톡톡히 봤다. 7남매의 어머니 민니 씨(36)는 7㎝ 크기의 갑상선 종양을 떼어내는 수술을 받았다. 민니 씨 가족은 한국 의료진에게 무료로 수술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캄보디아 북서쪽 태국 국경에 인접한 마을 뽀이 뺏에서 봉고차를 빌려 타고 8시간을 달려 병원을 찾았다. 올해 스물 한 살인 큰아들 혼자 집을 지키고, 부부와 6남매가 병원 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박하경 부산백병원 교수의 집도로 성공리에 수술을 마친 민 니 씨는 한쪽 갑상선만 절제해 평생 호르몬제를 복용하지 않아도 되는 행운을 얻었다. 원칙대로라면 퇴원하고 일주일 후 외래진료를 위해 다시 와야 하지만 병원 측의 배려로 6남매와 함께 병원에 머물다가 실밥을 뽑고 집에 갈 수 있게 됐다. 눈만 마주쳐도 까르륵 웃던 6남매는 한국 의료진이 건넨 과자를 엄마에게 가져다주기도 하고, 혹이 없어진 수술 부위를 신기한 듯 들여다보기도 했다. 네 살, 여섯 살 두 아들에게 의사 선생님에게 할 말이 있느냐고 묻자 진지한 얼굴로 “어꾼 쯔라은” 하는가 싶더니 3초도 안 돼 다시 까르륵 웃으며 병실을 뛰쳐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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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봉사를 마치고 한국으로 떠나기 직전 환자들을 마지막으로 체크하는 의료진에게 `귀염둥이 6남매`가 다가왔다. 바쁜 일정 속에서 잠시 마주칠 때마다 블루크로스의료봉사단을 활짝 웃게 만들었던 `헤브론병원의 스타들`과 기념촬영을 했다. 뒷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김광 서울백병원 전공의, 양송이 고신대 복음병원 교수, 송지형 부산백병원 전공의, 장여구 서울백병원 교수, 갑상선 수술을 받은 어머니 민 니 씨와 6남매. [신찬옥 기자]

이들 외에도 유방암 6명, 갑상선 8명, 대장 절제수술을 받은 후 소장 복원술 1명, 탈장 2명 등 총 17명이 블루크로스 의료봉사단에 무료로 수술을 받았다. 장 교수는 “많게는 서른한 명까지 수술했던 때도 있었는데, 올해는 환자가 적어 아쉽다”면서도 “넷째날 유방암 환자와 갑상선암 환자 수술이 한국에서도 1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까다로운 케이스였는데 잘 마치고 회복 중이어서 뿌듯하다”고 말했다. 특히 김 단장이 집도한 갑상선 환자는 한국처럼 지혈기계가 따로 없는 탓에 커다란 종양을 움직여 시야를 확보하고 200개의 혈관을 일일이 묶어가며 수술을 해야 했다.

환자들은 한국인 선교사를 통해 정보를 듣고 의료진이 오는 날짜에 맞춰 캄보디아 전역에서 찾아온다. 블루크로스 의료봉사단은 8년째 헤브론병원과의 약속을 지켰다. 올해는 부산 고신대 복음병원에서 신연명 교수와 양송이 교수(이상 외과), 박태우 전공의(마취과), 수술실 지화진, 황선미 간호사와 회복실 한슬기 간호사 등 6명, 부산백병원에서 김상효 단장과 박하경 교수, 송지형 전공의(이상 외과) 등 3명, 상계백병원에서 김문철 교수와 김용덕 전공의(이상 마취과) 등 2명, 서울백병원에서 장여구 교수와 김광 레지던트(이상 외과), 수술실 정재원 간호사 등 3명, 유영준 압구정 본성형외과 원장과 주호민 세화제약 대표(외과 전문의) 등 18명이 바쁜 일정을 쪼개 자비를 들여 참여했다. 봉사단은 항생제와 갑상선 호르몬제, 결핵 시약세트 등 수백만 원 상당의 의약품도 기증했다.

블루크로스 의료봉사단의 영어 이름은 ‘Dr. Chang’s Medical Camp’다. 헤브론병원 직원과 선교사들은 이들을 ‘장기려 팀’이라고 불렀다. 여러 병원의 의료진을 한데 모은 사람이 1995년 84세로 타계한 성산 장기려 박사이기 때문이다. 치료비가 없는 환자 몰래 병원비를 내주고, 스스로는 청빈한 삶을 살았던 장 박사는 ‘한국의 슈바이처’ ‘가난한 사람들의 주치의’로 불린다. 한국전쟁 중이던 1951년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을 위해 부산 영도의 천막진료소에서 무료진료를 시작했고, 이곳이 현재 고신대 복음병원의 모태가 됐다. 장 박사는 1943년 우리나라 의사로는 최초로 ‘간 부분절제’에 성공할 만큼 실력 있는 의사였고, 1968년 우리나라 의료보험의 모태가 된 청십자의료보험을 설립하는 등 굵직한 족적과 숭고한 가르침을 남겼다. 한국이 변방의 나라가 아니었다면 적십자(Red Cross)보다 청십자(Blue Cross)가 유명했을지 모른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그의 업적은 독보적인 것이었다.

생전 장 박사와 인연이 있는 베테랑 교수들이 뜻을 모으고 이에 공감한 젊은 의사와 간호사들이 합류해 매년 ‘의료봉사 드림팀’이 꾸려질 수 있었다. 연일 유방암 수술을 집도하면서 이번 봉사단을 이끈 장여구 교수는 장 박사의 손자다. 중학생 때부터 오지 의료봉사를 함께 다녔던 장 박사의 증손자 지인 씨(의대 재학중)도 함께했다. 조부의 가르침을 받들어 수십 년째 오지를 찾아다니며 해외봉사를 하고 있는 장 교수에게도 헤브론병원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2010년 12월 이 병원에 처음으로 전신마취 수술을 세팅한 것이 그와 김 단장, 김 교수이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헤브론병원은 심장수술 등 수백 건의 수술을 진행하는 의료봉사의 상징이 됐다. 국내외에서 매년 40여 개 의료팀이 헤브론병원을 찾아오지만, 갑상선과 유방암 수술을 하는 의료진은 블루크로스가 유일하다. 진료비는 부르는 게 값이고, 의사를 한 번 만나려면 월급의 3분의 1을 써야 하는 캄보디아 환자들 입장에서는 평생 한 번 찾아 올까 말까 한 소중한 기회인 셈이다.

헤브론병원에서 무료 진료를 받으려면 선착순 번호표를 받아야 한다. 병원은 노숙하는 환자들을 보다 못해 내정에 큰 강당 겸 대기실을 짓고, 밤 11시에 병원 문을 열어 밤새 쉴 수 있도록 배려했다. 그들을 바라보던 김 단장은 “나와 내 동생도 미국 선교사들이 운영하던 병원에서 무료 진료를 받기 위해 저렇게 담요 한 장을 들고 밤새 기다렸던 시절이 있었다”면서 “지금 우리가 봉사하는 것은 그때 받았던 사랑과 은혜을 돌려주는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김우정 헤브론 메디컬센터 센터장은 “이번 장기려팀의 여덟 번째 봉사는 헤브론병원 10주년 행사와 맞물려 더 뜻깊었다”며 “수술받은 환자들이 기뻐하고 감사하는 모습을 보는 저희도 행복하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했다.

장 교수는 출국 전 김 센터장과 내년 봉사 일정을 논의했다. 아홉 번째 약속이다. 내년에도 봉사단은 열 일 제쳐놓고 헤브론병원을 찾을 것이고, 제2의 후에이와 제2의 민니 씨가 환하게 웃으며 “어꾼 쯔라은”이라고 말할 것이다. ‘우리는 한 번에 한 사람만을 안을 수 있다’고 마더 테레사는 말했다. ‘장기려’라는 이름은 모르겠지만, 그의 가르침대로 바쁘게 뛰어다니는 ‘장기려팀’을 보는 캄보디아 환자들의 얼굴에는 감사와 행복한 미소가 가득했다.

메디컬 원아시아는
7년째 오지서 의료봉사…아시아 의료격차 해소

매일경제

메디컬원아시아는 매경미디어그룹이 해외 의료 봉사 활동에 참여하는 주요 병원 의료진과 동행해 생생한 현장을 심층 취재·보도하는 프로젝트다. ‘아시아의 의료격차 해소(Medical One Asia: Bridging the Medical Divide)’를 모토로 2011년부터 7년째 치료 기회를 얻기 힘든 아시아 오지 마을을 찾는 의료진과 함께하고 있다. 오지의 소외된 환자들을 찾아 무료 의료 봉사 활동을 펼치는 의료진의 미담은 한국과 아시아의 의료 협력은 물론 정치사회 교류에도 기여해왔다.

이는 매경미디어그룹이 강조해온 ‘아시아가 세계경제를 견인하기 위해 상호 존중과 협력을 통해 원아시아를 구축하자’는 패러다임의 지평선을 의료로 넓힌 것이기도 하다. 세계 인구의 3분의 2가 넘는 44억명이 살고 있는 아시아는 최근 몇 년 새 글로벌 경제 중심으로 급부상했다.

하지만 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 인도네시아, 몽골, 중앙아시아 등지에 살고 있는 많은 주민들은 아직도 현대 의료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불과 40~50년 전만 해도 한국 역시 같은 처지였다. 제때 치료받지 못한 영유아와 산모들이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다. 당시 미국, 유럽 등 선진국 의료진이 한국을 찾아 무료 봉사 활동을 펼쳤고, 미국은 한국전쟁 직후인 1960년대 ‘미네소타 프로젝트’를 만들어 한국 의사들을 초청해 의술을 가르치기도 했다.

한국은 그사이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 세계 11위 경제력(IMF 기준 2017년 1조5300억원)을 가진 국가로 성장했다. 우수한 인재들이 꾸준히 의대에 진학하면서 현재 우리 의료진과 의술은 세계 최고를 자랑한다. 메디컬원아시아 발자취는 눈부시다. 2011년 7개국 9곳에서 의료진 230여 명이 9800여 명, 2012년에는 의료진 170여 명이 8개국에서 봉사 활동을 펼쳐 현지 주민 215명에게 무료 수술, 5620여 명에게 무료 진료를 해줬다. 2013년에는 인도네시아(메단), 몽골(울란바토르)을 찾았고 2014년에는 미얀마, 네팔, 캄보디아, 우즈베키스탄을 찾아 약 2300명에게 무료 진료와 각종 검사를, 총 100여 명에게 심장병, 갑상선암, 유방암, 자궁경부암 수술을 해줬다.

매일경제신문과 MBN은 지난해에도 라오스 비엔티안 국립아동병원과 말레이시아 쿠칭, 미얀마 양곤·얀킨어린이병원을 찾아 약 130명에게 무료 수술과 진료, 의약품을 처방해줬다.

지금까지 매경미디어그룹이 동행했던 주요 의료기관 및 단체는 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연세대 의료원, 가톨릭의료원, 인제대 백병원(블루크로스 의료봉사단), 이화의료원, 순천향대 중앙의료원, 한림대의료원, 고려대의료원, 분당서울대병원, 대한병원협회, 인도차이나클럽(전국 대학병원 성형외과 교수 주축 봉사단), 스포츠닥터스, 아이러브안과 등이다.

[프놈펜 = 신찬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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