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석규의 대몽골 시간여행-68] 누가 겨울에 러시아를 제압했나? ②


[배석규의 대몽골 시간여행-68] 누가 겨울에 러시아를 제압했나? ②

▶철저히 파괴된 첫 상대 랴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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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군이 루시로 들어서서 첫 번째로 마주친 상대는 북 볼가강 유역에 있는 랴잔(Ryazan) 공국이었다. 1237년 12월, 몽골의 푸른 군대는 혹한 속에 얼어붙은 볼가강을 이용해 랴잔공국에 대한 공격을 감행했다. 이 전통의 도시와의 첫 전투는 몽골군에게 어렵고 힘든 싸움이었다. 랴잔 공국은 몽골군의 공격으로 초토화되고 온 국토가 황폐화됐지만 바투군도 적지 않은 손실을 입었다.
랴잔의 주민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도시 방어에 참가해 용감하게 싸웠다. 전투 엿새째 되는 날에야 몽골군은 파벽기로 겨우 성벽을 깨뜨리고 도시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후 벌어진 상황은 참혹함이 극치를 이루는 학살극 이었다.

“저녁 무렵이 되면서 도시 안에 살아남은 사람은 하나도 없어서 죽은 사람을 위해 눈물 한 방울 흘려줄 사람조차 아무도 없었다.”

러시아 문학사에서 가치 있는 고전으로 여기고 있는 ‘바투의 랴잔 공격에 관한 이야기’가 기록하고 있는 당시 상황이다. 이 전투에서 몽골군도 수천 명이나 목숨을 잃었다.
몽골군 침공의 첫 희생물이 된 라쟌은 9세기 초 스칸디나비아 상인들이 교역도시로 세운 루시의 가장 오래된 초기도시 가운데 하나다. 랴잔은 모스크바에서 동남쪽으로 그리 멀지 않은 볼가 강변에 자리 잡고 있는 중소도시다.

▶두 거장 문학가와 인연 있는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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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도시는 두 명의 저명한 러시아의 문학가와도 인연이 있는 도시다. 말년에 가출을 했던 러시아의 거성 톨스토이(Tolstoy)는 이 라쟌의 작은 간이역 역장 관사에서 숨을 거두었다. 또 한사람은 20세기 러시아 문학의 거장 솔제니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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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제니친(Solzhenitsyn)은 1962년 이곳 중학교에서 수학교사로 근무하면서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를 세상에 선보였다. 이 작품이 노브이 미르(Ноый Мир: 신세계)지에 실리면서 솔제니친은 일약 세계적인 작가로 떠오르게 됐다.
또 한사람의 노벨상 수상자인 심리학자 파블로프(Pavlov) 역시 라쟌 출신이다. ‘조건 반사’를 상징하는 ‘파블로프의 개’로 널리 알려진 파블로프는 1904년 노벨 의학상을 수상했다.

▶혹한 속 對러시아 승전 기록
이러한 사연을 지니게 될 라쟌은 당시에 철저히 파괴됐다. 랴잔의 필사적인 저항은 몽골군의 철저한 응징이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여기에 전투 초기에 본보기로 상대를 초토화시키는 몽골군 특유의 공포전술이 구사됐을 것으로 보면 랴잔은 불운했다. 바투의 원정군은 랴잔을 뒤로하고 북쪽으로 전진을 계속했다. 1237년과 1238년 사이의 진행된 이 작전은 혹한의 한겨울에 진행됐다는 점이 주목된다.

몽골의 원정군은 러시아를 상대로 혹한의 겨울에 연전연승함으로써 나폴레옹도 히틀러도 이루지 못했던 위업을 이루었다. 러시아의 최대 무기가운데 하나인 혹한도 몽골군에게는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고 오히려 몽골의 기마 군단은 얼어붙은 강과 하천을 이용해 목표물에 훨씬 쉽게 접근 할 수 있었다. 이들은 겨울에 러시아를 패퇴시킨 전무후무(前無後無)한 기록을 남긴 것이다.

▶초기 루시의 古都, 황금의 고리
러시아에는 황금의 고리 도시 즉, 잘라또에 꼴리쪼(Золотое Колъцо: 黃金의 環)라는 것이 있다. 모스크바를 벗어나 북동쪽으로 나아가면 볼가 강변에 이르는 일대에 중세 러시아의 고도(古都)들이 여러 곳에 산재해 있다. 이 도시들을 연결시켜보면 거의 원과 비슷한 모습을 이루기 때문에 이를 황금의 고리라고 부른다.

블라디미르와 수즈달리, 로스토프, 야로슬라블리 등이 황금의 고리에 포함된 도시로 그리이스 정교회의 사원과 슬라브 궁전 등이 대부분 옛 모습을 지닌 채 초기 루시의 도시 모습을 간접적으로 일러주고 있다. 그래서 지금 이 황금의 고리는 투어 버스를 타고 둘러보는 유명한 관광코스가 되고 있다.

▶황금의 고리 도시 함락
황금의 고리라는 이름은 나중에 붙여진 것이기는 하지만 라쟌을 함락시킨 몽골 원정군은 바로 이 황금의 고리 도시들을 향해 북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여기에 모스크바까지 포함됐지만 당시 모스크바는 나중에 크렘린이라고 불리게 되는 성채만 가지고 있는 조그마한 마을에 불과해 몽골군이 크게 안중에 두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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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군은 황금의 고리의 중심도시 블라디미르(Vladimir)를 공략했다. 당시 도시는 10미터 높이의 성곽으로 둘러쳐져 있었다. 몽골군은 성 주위를 포위하고 투석기 등을 통해 밤낮으로 공격하며 성안의 사람들을 잠시도 쉬지 못하게 했고 결국 성벽을 허물어뜨리고 들어가 이 도시를 함락했다고 카르피니의 기록은 전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전투와 관련한 내용은 당시 볼가강 지역에서 포교 활동을 하고 있었던 도미니크회 수도사 유리앙의 정보 보고서에도 나타나고 있다.

이 보고서에는 몽골군이 크게 3개 집단으로 나누어 작전을 펼치고 있었다는 것과 공격은 겨울에 얼음이 얼어 기마 군단이 이동하기 좋은 때에 이루어진다는 내용이 담겨져 있었다. 인근의 수즈달리, 로스토프, 야로슬라블리 등도 블라디미르와 크게 다르지 않게 몽골군의 수중에 떨어졌다.
당시의 상황을 러시아의 연대기들은 몽골군의 잔혹한 행위를 오랑캐, 강도, 살인마 등 극단적인 표현을 동원해가며 크게 부각시키고 있다.

▶해빙기가 살린 노보고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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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인근 지역을 장악한 바투 원정군의 다음 목표는 노보고르드(Novgorod)였다. 노보고르드는 모스크바에서 북동쪽으로 530Km 떨어져 있다. 상트 페테르스부르그(Saint Petersburg)에서 따지자면 남쪽으로 180Km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물론 당시에는 상트 페테르스부르그라는 도시가 생기기 전이었다. 키예프 다음가는 강력한 공국이었던 노보고르드는 그러나 해빙기가 찾아오면서 겨우 살아남을 수 있었다.

혹한의 겨울동안 폭풍처럼 몰아치던 몽골군은 오히려 해빙기를 맞아 눈과 얼음이 녹으면서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기가 어려웠다. 질척거리는 진창길이 오히려 전진을 방해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비록 승리했다고는 하지만 몇 달간의 연이은 전투에서 몽골군의 피해도 적지 않았고 병사들도 상당히 지쳐 있었다. 바투는 전열의 재정비와 함께 병사들에게 휴식을 줘야할 필요성도 느꼈다. 그래서 방향을 남쪽으로 되돌려 킵차크 초원지대로 되돌아갔다.

▶루시 원정의 최후 목표 키예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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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투의 원정군이 원기를 회복해 다시 루시 원정에 나선 것은 1년 남짓이 지난 1239년이었다. 오늘날 우크라이나 지역인 루시의 남부와 서부지역을 점령했던 바투군은 1240년 가을, 대군을 이끌고 키예프(Kiev)로 접근해 들어갔다. 키예프는 바투가 최후의 목표로 삼았던 곳이다. 키예프는 루시, 즉 ‘러시아 모든 도시의 어머니’로 불리어지는 고대 러시아 민족 체의 요람이었다.

훗날 러시아 제국을 이루는 중심 종족인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 백러시아인은 모두 여기에서부터 형성돼 나왔다. 3백년 이상 지속된 키예프 러시아는 상업과 수공업의 중심지이자 종교의 중심지로 11세기와 12세기에는 유럽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도시가운데 하나였다. 이 시대의 연대기 작가 아담은 키예프를 가리켜 “동방의 자랑이요, 콘스탄티노플에 필적할 만하다”고 기술했다. 몽골군 공격 당시 키예프가 약화의 길을 걷고 있기는 했지만 여전히 루시의 중심도시로서 위용을 갖추고 있었다.

▶파괴하지 않고 접수하고 싶었던 키예프
이 키예프로 접근해 들어간 바투는 고대 러시아 수도의 웅장함과 아름다움에 크게 감명 받았다. 그래서 그는 가능하면 싸우지 않고 키예프를 손에 넣고 싶어 했다. 그러나 목숨을 걸고 도시를 지키기로 결의한 키예프인들의 저항에 부딪쳐 전쟁을 피할 수가 없었다. 키예프와의 전투도 랴잔에서와 비슷한 모양으로 전개돼 갔다. 모든 주민들의 저항 속에 몽골군은 어렵게 도시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고 그 이후에도 시가전을 펼치며 저항하는 키예프인들과 오랫동안 전투를 벌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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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게 키예프를 손에 넣은 몽골군은 며칠 동안 도시를 파괴하고 주민들을 학살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이 지역에 있었던 교황청의 한 외교관은 “키예프에는 살아남은 것이라고는 거의 없었고 모든 도시가 파괴돼 2백여 채의 초라한 집만 남아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키예프의 점령은 바투군의 러시아 정벌이 거의 마무리단계에 들어섰다는 것을 의미했다.
배석규 칼럼니스트

오영훈 hoon@a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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