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두식 칼럼] ‘지지율 70%’에 눈먼 정권의 휴브리스


[박두식 칼럼] '지지율 70%'에 눈먼 정권의 휴브리스

이 정권은 자신들이 우리 사회의 다수를 차지했다고 자신

그러나 현실 정치에서 정권의 지분은 40%

이걸 잊은 채 오만을 키우고 있다

한국갤럽이 지난주 발표한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은 72%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취임 6개월을 전후한 시점에서 문 대통령보다 지지율이 높았던 대통령은 김영삼 전 대통령(83%)뿐이다.
대통령에게 높은 지지율은 커다란 정치 자산이다. 문 대통령은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수석과 비서실장을 지내면서 이 사실을 체감했다. 취임 첫해 노(盧) 정권은 총체적 난국에 빠졌다. 노 전 대통령은 대선에서 이겼어도 승자의 여유를 부릴 처지가 못 됐다. 야당인 한나라당이 국회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있었고, 호남 세력이 주축인 여당 내에서도 ‘노무현 세력’은 소수였다. 이를 의식한 듯 대선 승리 이틀 만에 정권의 정치 고문 역을 맡고 있던 김원기 전 국회의장이 공개적으로 “대선에서 우리 당이 이겼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대선 승리는 여당이 아니라 ‘노무현과 그 세력의 몫’이라는 뜻이다. 여당 내의 반대 세력조차 포용할 수 없는 협량(狹量)에 노 전 대통령 특유의 ‘비(非)주류·소수파’라는 피해 의식이 더해지면서 정권의 입지는 좁아졌다. 노 전 대통령 지지율은 국정 운영이 힘겨울 만큼 추락했다.

취임 석 달 만에 노 전 대통령 입에서 “대통령직 못 해먹겠다”는 말이 나오더니 그로부터 석 달 뒤엔 대통령 재신임을 묻는 국민투표를 하겠다고 나섰다. 노 전 대통령의 임기 첫해는 대통령에게서 시작된 혼돈과 분란이 끊이지 않은 시기였다. 대통령이 지지층은 물론 국민과 불화를 빚고 헌정(憲政) 질서와 충돌했던 것이다.

문재인 정권의 모태는 ‘노무현’이다. 그러나 이 정권에선 노 정부 시절 만연했던 ‘비주류·소수파’라는 피해 의식이 크게 드러나지 않고 있다. 거꾸로 여권 핵심 인사들은 자기들이 우리 사회의 다수가 됐다는 자신감을 내비치곤 한다. 이런 이야기를 할 때면 ‘7대3’ 구도를 자주 거론한다. 여론의 70%가 자기들을 지지하고 있으며, 이 정권의 국정 운영에 공감하고 있다는 것이다. 야당과 부딪칠 때나 자신들에게 비판적인 사람들을 향해 “언제까지 30%도 안 되는 소수·극단 진영에 갇혀 있을 것이냐”고 되묻기도 한다. 작년 이맘때 서울 도심을 가득 메웠던 촛불 인파, 뒤이은 대통령 탄핵과 대선 승리, 취임 6개월이 지났어도 70%를 웃도는 대통령 지지율, 회생 기미가 보이지 않는 보수 야당의 지리멸렬한 상황 등등이 이 정권으로 하여금 이런 자신감을 갖게 했을 것이다.

이 정권은 지지율 70%의 힘을 ‘과거 9년과의 전쟁’에 쓰고 있다. 노무현 정부가 물러난 이후 보수 정당이 집권했던 9년을 적폐로 몰아세우고 있다. 이들의 ‘과거 집착’은 전혀 새롭지 않다. 노 정권은 집권 2년 차에 지지율 반등 계기를 잡았다. 2004년 3월 국회에서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을 강행 통과시키자 여론의 역풍이 불면서다. 그 직후 치러진 4월 총선에서 ‘노무현 세력’이 만든 열린우리당이 국회 다수당이 됐고, 대통령 지지율도 치솟았다. 노 정권은 이렇게 되찾은 힘을 과거와의 전쟁에 쏟아부었다. 당시엔 2002년 대선 이전의 한국 현대사 전체가 청산 대상이 됐다. 일제(日帝) 시대는 물론이고 구한말 때 문제까지 건드렸다. 정부 각 부처는 ‘과거사 진상 규명위’를 만드는 부산을 떨었다. 그렇게 정권의 힘을 소진한 끝에 노 전 대통령의 임기 말은 여당까지 대통령에게 등을 돌리는 참담한 상황을 맞았다. 노 정부에서 이 나라 현대사 전체를 대상으로 격전을 치렀던 이들이 이제는 노 정권 이후 보수 집권 9년을 놓고 사생결단 전투에 나선 셈이다.

권력의 실패를 논할 때 정치학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말이 휴브리스(hubris·오만)라는 단어다. 아널드 토인비에 따르면 이 말은 “성공을 거둔 소수가 그에 자만해 인(人)의 장막에 둘러싸여 지적·도덕적 균형을 상실하고 판단력을 잃는 것”을 뜻한다. 요즘 이 정권을 보면 휴브리스라는 단어를 자주 떠올리게 된다. 현재 국회에서 여당의 지분은 40.5%(300석 중 121석)다. 지난 5월 대선 때 문 대통령의 득표율 41%와 거의 같다. 이 수치가 현재 이 정권이 이 나라 운영에서 갖고 있는 실제 몫일 것이다. 60%를 차지하고 있는 야당과 협력하는 협치(協治)는 선택 문제가 아니라 정권의 성공을 위해서도 꼭 있어야 할 필수 사항이다. 그러나 이 정권은 ‘대통령 지지율 70%’를 앞세워 윽박지르는 데만 열중하고 있다. ‘7대3’이라는 신기루에 눈이 멀어 정권의 휴브리스만 키워가고 있는 것이다. 번번이 국회와 충돌해 온 인사(人事) 문제가 대표적인 예다.

휴브리스가 괴물로 자라면 권력은 스스로 무너진다. 취임 6개월 기준으로 지지율이 가장 높았던 김영삼 전 대통령은 6%로 임기를 마쳤고, 셋째로 지지율이 높았던 박근혜 전 대통령의 마지막은 5%였다.

[박두식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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