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위 큰 스승이 떠났다”


‘연극계 代母’ 이병복 선생 장례

“한눈팔 새 없이 북 치고 나팔 불었는데 해놓은 일은 없고 해야 할 일만 남았네요. ‘시간’이란 상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2015년 ‘이해랑 연극상’ 특별상을 받은 노장(老匠)의 수상 소감이 후배들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러나 시간은 끝내 기다려주지 않았다. 공연예술계 대모(代母)이자 1세대 무대미술가인 이병복(91)이 12월 29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31일 고려대 안암병원에 마련된 영정 속 고인은 노란 니트에 트레이드 마크였던 헝클어진 단발머리를 한 채 웃고 있었다. 1966년 고인이 창단한 극단 ‘자유’의 멤버였던 배우 박정자는 “인생 단 한 분의 스승이 떠났다”며 눈물지었다. 배우 손숙은 “마지막 가시는 길에 ‘나는 무대 뒤 먼지 쓸다 간다’며 ‘주변에 폐 끼치지 않고 조용히 사라질 것’이라고 하셨다”고 전했다.

그는 1926년 경북 영천 출신으로 이화여대 영문과를 졸업한 뒤 1948년 극단 ‘여인소극장’을 만들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서양화가 권옥연(1923~2011)과 결혼, 프랑스에서 조각과 의상을 공부했다. 고인이 40여년 이끈 극단 ‘자유’는 현대 연극사를 수놓은 배우들의 산실이었다. 박정자, 김용림, 김무생, 최불암, 고(故) 윤소정을 비롯해 김혜자, 고두심, 유인촌, 박상원 등이 이곳을 거쳐 갔다. 그는 한국 공연사에서 무대미술과 의상을 예술적 장르로 끌어올린 주역이다. 한지·삼베 등 전통 재료를 이용한 한국적 이미지를 무대에 형상화하며 창의성을 빛냈다. 화관문화훈장, 백상예술상 등을 받았다.

빈소에는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구자열 LS그룹 회장, 임권택 영화감독, 이호재 가나아트센터 회장, 유인촌 전 문체부 장관, 배우 최불암, 강부자 등 수백명 문화예술계 인사가 찾았다. 유족은 첼리스트 권유진, 재불 화가 권이나씨. 발인은 1월 1일 오전 7시. 대한민국 연극인장. (02)927-4404

[최보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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