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엔 ‘수염 없는’ 남자들 수시로 ‘사표’ 쓴다


내년엔 '수염 없는' 남자들 수시로 '사표' 쓴다

2018년 뒤흔들 주제어 ‘격 다른 가짜’

귀찮은 털 제모 후 인조수염 멋낸 男

이케아 장바구니를 패러디한 명품백

‘B급문화’ 역습 이끄는 세대부상으로

‘진짜’ 눌러버릴 ‘가짜 소비시대’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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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트렌드 2018

김용섭|340쪽|부키

[이데일리 오현주 선임기자] 구레나룻까지는 아니어도 턱선을 따라 잘 다듬어진 수염이 남성미의 상징이던 시절이 있었다. 엘비스 프레슬리가 좀 거북하다면 브레드 피트쯤에서 멈추면 된다. 좀 더 끌어내리면 휴 잭맨이 있고 리어나도 디캐프리오도 있다. 여전히 턱수염은 길이에 상관없이 남성성을 끌어올리는 결정적 한방이긴 하다. 물론 잘 관리가 됐을 때의 얘기지만. 그런데 남자들이 이 ‘결정적 한방’을 포기하고 나섰다. ‘수염 없는 남자로 살고 싶다’고 선언한 것이다. 피부과를 찾아가 반영구 제모 레이저 시술을 받는 남성이 늘어나는 추세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른바 그루밍족의 극단적인 형태가 출현한 것이다. 그루밍족은 패션과 미용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남자를 일컫는 신조어. 이들의 항변은 깨끗한 이미지와 피부로 모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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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한국 그루밍시장은 세계 최고의 성장세란다. 남성 화장품시장은 2009년부터 2014년까지 62.8%가 부풀었고, 2020년까지 50% 이상 더 커질 전망이다. 제모용품 시장은 더욱 가파르다. 한 브랜드가 내놓은 ‘매너남 다리숱 정리 면도기’는 2015년 대비 2016년 매출이 100% 증가했다니. 반바지 사이로 드러난 매끈한 다리를 선호하는 건 이제 성별을 따질 일이 아닌 게 됐다. 이로써 큼직한 어젠다 하나가 던져졌다. ‘제모 선택의 자유, 이젠 트렌드다.’

그런데 이와 맞물린 재미있는 현상 한 가지. 가짜 수염의 등장이다. 수염이 화장 혹은 액세서리가 된 것이다. 관리하기 버거운 진짜 수염은 영원히 제거해버리고 간혹 다른 스타일을 연출하기 위해 가짜 수염을 도구로 꺼내 들었다는 소리다. 제모와 가짜 수염은 사실 상극이다. 하지만 묘하게도 시너지효과를 내는 중이다. 가짜란 게 우리가 알던 그 짝퉁이 아니란 뜻이다.

해마다 의식주의 소비형태를 골격으로 내년의 라이프스타일을 가늠해온 저자가 2018년에도 굵직한 주제어를 앞줄에 세웠다. ‘가짜’다. 그냥 가짜가 아니다. 진짜를 눌러버릴 힘을 가진 ‘아주 멋진 가짜’(classy fake)다. 이를 드라마틱하게 실행에 옮길 키워드도 있다. ‘역습·반격’(counterattack). 이 둘을 축으로 책은 내년 트렌드 양상을 가지치기한 셈인데. 풀어내자면 ‘격이 다른 가짜’로 세상의 뒤통수를 칠 거란 뜻이 된다. 말 많은 천연가죽보다 인조가죽에 빠져들고, 명품에 스트리트패션을 융합한 상품에 솔깃하고, 속은 똘똘한 디지털이면서 겉은 어리숙한 아날로그에 취하는, 그 숨은 욕망을 까발릴 때가 됐다는 얘기다.

▲투자를 부르는 ‘가짜’

그렇게 2018년은 본격적인 ‘가짜 소비의 시대’가 될 거란 게 저자의 확신이다. 가짜를 사들인다는 의미가 아니다. 가짜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는 거다. 여기에 ‘역습’이 가해지면 상황은 ‘반전모드’로 확장된다. 사실 앞뒤를 뒤집는다는 건 결코 단순치 않다. 선입견과 습관을 버린다는 뜻이니까.

예컨대 매일 관성처럼 먹던 달걀을 ‘가짜’로 바꾸라고 한다면? 이에 대한 답으로 저자는 그럴듯한 가짜의 대표주자를 꼽는다. 햄튼크릭푸드란 회사가 만든 ‘가짜 달걀’ 시리즈다. 완두콩·수수 등에서 단백질을 뽑아 만든 진짜 ‘가짜 달걀’은 물론 ‘인공 달걀 마요네즈’ ‘인공 달걀 쿠키’ 등. 무엇보다 ‘대놓고 만든’ 가짜 달걀에 ‘대놓고 투자한’ 면면이 대단하다고 했다. 빌 게이츠, 세르게이 브린, 제리 양 등 IT업계 거물을 비롯해 중국의 거대기업 청쿵그룹의 리카싱 회장, 정치인 토니 블레어 영국 전 총리 등. 이들은 가짜 달걀 생산에 2억 2000만달러(약 2459억원)를 기꺼이 모아줬다. 결국 달걀 자체보다 식품에 기술이 훅 들어간 ‘푸드테크’의 성장가능성을 높이 평가한 게 아니겠느냐는 분석이다.

진짜와 가짜가 역전되는 경우도 왕왕 생긴다. 이런 거다. 발렌시아가가 올해 봄·여름시즌 상품으로 야심차게 선보인 ‘캐리 쇼퍼 백’이 있다. 그런데 이게 좀 희한하다. 가구쇼핑몰 이케아에서 제공한 장바구니와 아주 닮았다. 과연 이래도 되는 건가. 오리지널인 99센트짜리 장바구니가 2150달러(약 240만원)짜리 짝퉁 명품백으로 둔갑해도 되느냐는 말이다. 저자에 따르면 ‘된다’. 두 기업 사이에 어떤 계약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발렌시아가가 브랜드 개발 차원에서 이케아 장바구니를 영입했다고 하니. 여기에 이런 패러디가 갈수록 늘어날 것이란 데 대못을 박는다. 순하게 말하면 ‘패스트패션과 명품브랜드의 콜래보레이션’이고, 격하게 말하면 ‘B급 문화의 역습’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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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다 싶으면 미련없이 떠난다

이쯤 되면 비주류 혹은 을의 반격이 정해진 수순이다. 주목할 것은 진짜와 가짜의 경계에 놓인 이들이라고 했다. 그중에는 ‘오늘도 사표를 쓰는 사람들’이 있다. 사실 내일의 트렌드를 내다보는 데 ‘사표’는 긴밀한 매개가 된다. 직업이란 게 개인을 설명할 때 성별·나이만큼이나 뚜렷한 좌표가 되니까. 사표는 그 좌표를 바꿔버린다는 의미다.

전조는 불거졌다. 지난해 국내 ‘신입사원 채용실태 조사’를 봤더니 도드라진 건 채용률보다 퇴사율이더란다. 실컷 어렵게 뽑아놨더니 한 해도 넘기지 못하고 때려치우는 비율이 27.7%에 달하더라는 것. 2012년에 23.6%였으니 성장세다. 가장 큰 이유는 ‘조직문화와 직무적응 실패’라는 것. 이를 두고 인내심이 부족하다고 혀를 차는 기성세대도 있겠지만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는 점도 짚어야 한다. 윽박지르기와 살살 달래기로 가둘 수 없는 세대가 생겨났다는 뜻이다. 소유보다 경험을 중시하는 이들의 선택을 ‘포기’로 몰아붙여선 곤란하단 뜻이기도 하고.

▲‘숨은 욕망 찾기’는 내용보단 방향

내용만 다를 뿐이다. 해마다 세상에 드러나는 트렌드는 결국 ‘숨은 욕망을 찾기’로 정리된다. 그렇게 내년에는 불고기보다 스테이크가 뜰 전망이고, 문신으로 숨기던 타투를 패션코드로 상승시킬 거란다. 오랜 비주류던 힙합에 눈을 뜨고, 다음 자동차는 무조건 전기차로 사겠다고 결심한다. 물론 이 모두는 가짜에 한 발을 담그고 있다.

어찌 보면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주류를 벗어난 것이 꼭 가짜인 건 아니니까. 트렌드라는 게 어차피 예측이니 비켜갔다고 책임을 물을 일도 아니다. 그러니 결국 행간 읽기다. 트렌드에서 중요한 건 내용보단 방향이란 것. 아무리 잘 포장한 가짜도 세상의 방향과 맞아야 값어치를 한다는 것. 이것만 읽어내면 내년 승패의 반은 건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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