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욱의 커피이야기③]내가 원하는 커피 찾기


【서울=뉴시스】 얼마 전 일이다. 아이의 체험학습을 위해 어느 관광단지에 갔다. 부모와 함께 하는 체험 코스가 나름 유명한 곳이어서 많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줄도 많이 서 있고 날도 더워 불쾌지수는 점점 높아졌다. 그러던 중 커피 생각이 간절해 단지 안에 있는 카페를 찾았고 거기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아무 의심 없이 한 모금 마셨을 때 왠지 모를 불쾌감이 정점에 달았다.

◇콜드브루 vs 아메리카노

이유는 내가 시킨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아니었다. 콜드브루(더치 커피)가 나왔던 것이다. 주문한 커피를 손에 쥐고는 긴 줄을 다시 서서 판매대 앞에 섰다. 그리고 직원에게 커피를 잘못 주신 것 같다고 말한 뒤 콜드브루 커피를 주셨다고 하니 그 직원이 말하기를 ‘그게 아메리카노 맞아요’라는 답변이 왔다.

직업병 탓일까. 뒤에 긴 줄을 선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억지로 무시하며, 직원에게 옆에 에소프레소 머신을 가리켰다. ‘그걸로 뽑아 주셔야죠 이건 콜드브루 잖아요.’ 직원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위의 상사를 불러왔다.

그 파트의 책임자로 보이는 그 사람은 상황을 들은 후 나를 대열에서 벗어나게 하더니 원하시면 환불해 드리겠다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환불은 필요 없으니 대신 콜드브루 커피를 판매하실 거면 아메리카노 대신 정확히 ‘콜드브루’라는 명칭으로 판매해 줄 것을 강하게 부탁했다. 내가 이렇게까지 부탁한 이유는 사실 이런 경험을 다른 곳에서도 몇 번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 유행하고 있는 콜드브루(Cold Brew)나 더치커피(Dutch Coffee)에 대해 다 같은 커피인데 뭐가 문제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건 ‘의도’와 ‘목록화’라는 부분에서 우리가 스스로 살펴보아야 할 문제다.

첫 째 의도(intention)라는 부분에서 보면, 나의 의도와 판매자의 의도가 일치하지 않았고, 판매자 중심의 편의주의적 ‘의도’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요즘 유행하는 콜드브루나 더치커피는 일단 상온이나 차가운 물을 이용하여 내린다는 뜻으로는 같은 의미로 볼 수 있다. 하지만 통상적으로는 더치커피의 경우는 일본에서 사용하는 용어이기도 하지만 추출 방식이 주된 여과식과 약간의 침출식(침지식)이 혼합된 방식이고 콜드브루의 경우에는 주된 침지식 방식에 약간의 여과식이 혼합된 방식이다.

쉽게 말하면 찬물을 통째로 부어 오랫동안 담그어 추출하면 콜드브루이고, 한 방울씩 분쇄된 커피에 ‘떨어뜨려’ 내리면 더치커피이다. 여기에 최근에는 찬물을 이용한 압력기술을 이용, 단시간의 대량 생산방식까지 펼쳐지고 있다. 이런 것들은 물리적 차이와 그 뒤에 화학적 차이가 있다. 중요한 것은 이 상온수의 찬물로 내릴 때 나오는 맛과 향(향미)이, 뜨거운 물과 압력으로 내리는 에소프레소를 이용한 아메리카노의 향미와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의도’와 ‘목록화’의 관점에서 살펴보기

동일한 등급의 원두를 가지고 추출했을 경우 찬물에서 우러나오는 분자적 성질의 향미가 있고, 뜨거운 물에서 나오는 분자적 성질이 있다. 결국 기호의 차이지만 개인적으로는 뜨거운 물에서 추출하는 ‘다양한’ 향미를 나는 더 선호한다.

그런데 최근 더치커피를 아메리카노라고 판매한 커피의 경우 나의 이런 기호는 존중받지 못하고 판매자의 ‘의도’에 따른 선택만 존재하게 된다. 한 잔의 아메리카노를 만들기 위해서는 바리스타가 아침마다 산화과정에서 일어난 원두를 체크하고 그에 알맞은 분쇄도를 다시 조절해야 하며, 주문이 들어오면 탬핑(tamping)을 하고 추출되는 시간을 기다리며 그 과정 속의 향미가 포함된다.

콜드브루의 경우 이미 생산된 커피를 원액 그대로 주거나 혹은 뜨거운 물이나 차가운 물에 부어주면 된다. 많은 손님들이 밀려왔을 경우 더치커피가 훨씬 빠른 공정으로 나갈 수 있다. 과정의 절차가 짧아서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과정의 절차에 대한 간소화만을 위해 판매자가 아메리카노를 더치커피로 팔게 되면 소비자는 선택권 없이 오직 판매자 중심의 커피만을 마셔야 된다는 의미다.

청량음료라는 거대 시장에서 커피라는 ‘목록화’는 우리에게 큰 선택의 자유를 주는 듯하다. 그 관점에서 보면 커피의 목록화 안에 아메리카노나 콜드브루나 모두 수용가능한 부분이다. 하지만 미셸 푸코(Michel Paul Foucault)의 개념을 조금 빌려오면 커피 안에서 또 다른 세분화된 콜드브루나 아메리카노의 ‘목록화’가 있어 우리는 ‘커피’라는 뭉뚱그리는 ‘목록’ 대신에 자신이 원하는 커피를 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마시는 아메리카노나 콜드브루의 명명화된 ‘목록화’는 이미 생성과 동시에 사회화의 상호작용으로 인해 그 의미가 굳어지고 있다. 때문에 이미 명명된 커피를 넘어 우리 자신이 원하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을 정확히 이해하고, 화석화되기 쉬운 ‘목록화’를 지속적으로 살펴보며, 새로운 ‘목록화’를 끊임없이 발견하고 만들어야 한다. 그럴 때 한 잔의 커피 속에 ‘나’를 발견할 수 있다.

김정욱 딸깍발이 대표 (국민대학교 문화교차학 박사과정)

kyoung@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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