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담] 지인에게 들은 악몽 이야기


내가 중학생이었을 때의 이야기다.
 
 
나는 어릴적부터 추위를 잘 타서 아주 더운 여름을 제외하고는 도톰한 이불을 덮고 자곤 했다.
 
 
따뜻함도 그렇지만, 몸에 적당히 느껴지는 무게감도 좋아했다.
 
 
 
내 방에는 침대가 없어서 밤이 되면 방에 이불을 깔고 자고 아침에는 개는 식이었다.
 
 
한겨울엔 꽤 두꺼운 이불을 덮느라 부모님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어쨌든 이제까지 별일 없이 그렇게 살아오다가 어느 날 갑자기 악몽을 꾼 것이 내 이불 공포의 시작이었다.
 
 
 
꿈의 내용은 이랬다.
 
 
 
기분 나쁘게 추적 추적 천천히 적당한 양의 비가 내리고 있었다.
 
 
완전히 어두컴컴한 게 아닌 걸 보면 시간대가 밤은 아닌 거 같은데 흐린 탓인지 많이 어두웠다.
 
 
꿈이 쓸데없이 리얼했던 탓에 습도까지 느껴져서 후덥지근하다고도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머리 끝에서 발끝까지 나를 적시는 그 비가 어쩐지 끈적이는 거 같기도 했다.
 
 
 
주변엔 남자와 여자가 섞여서 몇 명이 있었는데 다들 하나같이 새까만 옷을 입고 있었다.
 
 
정장풍으로 보이기도 했는데 딱 봐도 엄숙한 자리에서나 입는 차림새였다.
 
 
남녀 구분이 된 건 머리카락 길이나 체격의 차이, 그리고 치마를 입은 사람도 있었기 때문이다.
 
 
 
 
 
주변을 멍하니 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누워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주변 풍경은 올려다봐야 했다.
 
 
아까부터 어쩐지 시야가 좁다 싶었는데 나는 그냥 땅이 아니라 파여진 땅속에 누워 있었다.
 
 
깊이는 내 몸에 키가 큰 사람이 올라 타면 평지와 겨우 닿을까 말까 하지 않을까 해서 한 1.8~2미터 이상은 하지 않았나 한다.
 
 
깊기는 깊은 거 같은데 그렇다고 마구 깊은 건 아니었기에….
 
 
 
바로 근처에 있는 진한 갈색의 흙이 비에 젖어서 비릿한 냄새가 가까이서 느껴졌다.
 
 
다시 위쪽을 올려다보면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내려다 보고 있을 터인 그들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머리카락이나 옷 등에 가려지거나 하는 문제가 아니다. 얼굴이 새카만 색이었다.
 
 
마치 얼굴만 어디 어두운 곳에 있는 것처럼 짙은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그나마 얼굴형이나 코 입의 윤곽만 겨우 보일 정도였다.
 
 
 
이상한 점은 더 있었다.
 
 
가위에 눌린 것처럼 몸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 자리에 그대로 정자세 일자로 뉘어진 채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가뜩이나 오싹한 상황에서 그것까지 알게 되니 당장이라도 일어나서 뛰쳐나가고 싶었다.
 
 
어디라도 좋으니 당장이라도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와서 도망치고 싶어졌다.
 
 
빗소리는 추적 추적 나는데 그 이외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를 내려다 보는 사람들의 말 소리도, 내가 숨을 쉬는 소리마저도.
 
 
 
냄새 같은 건 진짜처럼 맡아졌는데 신기하게 소리는 그랬다.
 
 
 
나가야 해 일어나야 해 빨리 빨리 얼른 빨리!!!
 
 
하지만 꿈을 꾸고 있을 땐 그게 꿈이란 걸 알지도 못했고 몸은 움직이지도 않으니 답답할 뿐이었다.
 
 
꿈이란 걸 알고 깨야 한다 생각해서 깰 수 있었다면. 거기서 꿈이 끝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어쨌든 빨리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다 갑자기 위에서 뭔가 끼얹어졌다.
 
 
흙덩어리였다.
 
 
위를 올려다보니 검은 옷의 사람들 전부가 하나씩 삽을 들고 있었다.
 
 
근처에 흙이라도 쌓아놨는지 몸을 비틀어서 푸는 동작을 하다가 내가 있는 곳을 향해 하나 둘 흙을 퍼붓기 시작했다.
 
 
 
한 번 상상해봤으면 한다.
 
 
비가 내리느라 후덥하고 어두운 날에, 흙 구덩이 속에서 움직이지도 못하는 채로 뉘어져서 얼굴도 안보이는 사람들이 자신을 향해 흙을 붓는다고.
 
 
게다가 비릿한 흙의 냄새가 나고 있고 들리는 것이라곤 빗소리 정도뿐이다.
 
 
 
으아아악!!!!!!!
 
 
 
악!!!!!!!!!!!!!!!
 
 
하지 마요!!!!!!
 
 
 
하지 말라고!!!!!!!!!
 
 
 
난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내가 낼 수 있는 한 최대한의 목소리로 한껏 소리쳤다. 미친 사람처럼 발광하듯이.
 
 
실제로는 온갖 험한 욕도 마구 썼다. 아직도 생각해 보면 그렇게나 소리지르면서 욕한 적은 그때가 유일할 정도로.
 
 
하지만 누구 하나 멈추는 이는 없었다. 마치 기계가 정해진 동작을 하는 것처럼 내 위에 흙이 한 덩이 두 덩이 척척 쌓아지기 시작했다.
 
 
 
겨우 보이는 얼굴의 윤곽도 가면인가 할 정도로 약간의 미동도 없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생매장 그 자체였다.
 
 
관도 없이 그냥 흙속에 뉘여진 나를 향해 다들 흙을 퍼부었다.
 
 
 
쓸데없이 생생한 꿈이라 흙의 비릿한 냄새만이 아니라 숨을 쉬기도 더 힘들어졌다.
 
 
시야도 흙 때문에 바깥 풍경이 전혀 보이지 않게 되었다.
 
 
떼거지로 흙을 계속 퍼부은 탓인지 금방 쌓아져서 흙의 무게도 상당하게 느껴졌다.
 
 
마치 양쪽 코가 심하게 막힌 것처럼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입을 열면 흙이 들어왔기에 입으로 숨을 쉴 수도 없었다.
 
 
도저히 못참아서 한 번 두 번 시도해보았으나 흙만 잔뜩 입에 들어왔고 목안이 답답해질 지경까지 되었다.
 
 
1분 아니 10초라도 좋으니까 한껏 숨을 쉬고 싶었다.
 
 
하지만 꿈은 깨지도 않았고 난 계속 흙속에서 괴로워했다.
 
 
몸을 바둥거려도 처음부터 움직이지 않았기에 그런지, 아니면 흙 무게까지 더해진 탓인지 움직이는 느낌은 없었다.
 
 
느껴지는 건 후덥하면서도 차가운 흙의 온도와 비릿한 냄새, 답답함, 그리고 무게로 인한 압박감이었다.
 
 
 
마치 흙으로 익사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꿈은 꿈일 뿐인지 다행스럽게도 난 꿈에서 깼다.
 
 
시끄럽게 우는 알람 시계를 꼬물거리며 손을 뻗어서 끄자마자 움직였다는 실감이 들어서 계속 몸을 바둥거렸다.
 
 
그러다가 덮고 있는 무거운 이불의 감각과 무게가 순간 소름끼치게 무섭게 느껴져서 확 걷어찼다.
 
 
꿈이 워낙 생생했던 탓에 마치 이불이 꿈에서의 흙으로 느껴졌다.
 
 
 
그 이후로 난 무거운 이불을 덮지 못했다. 아니 이불 자체를 덮지 못했다.
 
 
 
이불을 보는 거나 자는 거 자체는 괜찮았으나(너무 졸리면 나도 모르게 자기도 했고) 덮지는 못했다.
 
 
부모님께 꿈에 대해서 말하니 아직 애라며 웃으셨지만 반대로 난 화가 났다.
 
 
난 심각하게 무서워서 그러는데 알아주질 않으시니 속상했다.
 
 
이불을 바꿔주시긴 했는데 가벼운 이불로 바꿔도 덮을 수가 없었다.
 
 
내 몸에 뭔가 올라오는 거 자체가, 무게감이 느껴지는 거 자체가 무서워졌다.
 
 
한 번은 침대가 있는 부모님 방에 가서 자보려 했지만 매트의 그 느낌도 부모님이 덮어주시는 이불의 감각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자면 모르겠지 하고 억지로 참고 덮었지만 곧 가슴속이 마구 불안해지고 숨 쉬는 것도 제대로 안되는 것 같았고,
 
 
 
속이 미슥거리질 않나, 곧 온몸이 뜨거워졌다가 오금이 저리는 거 같고, 식은땀까지 나와서 덮을 수가 없었다.
 
 
그때가 아마 중간고사 전이고 좀 추웠으니 늦겨울의 2월~3월이었던 거 같다.
 
 
한참 뒤의 중간고사 때까지 끌고 갔으니…
 
 
 
하여튼 그 추운 시기에 두꺼운 이불은커녕 가벼운 이불도 덮지 않으니 믿을 건 전기장판과 보일러뿐이었다.
 
 
보일러는 함부로 만지면 혼났으니까 전기 장판 온도를 좀 더 올렸다.
 
 
하지만 따뜻한 건 전기장판에 닿는 부분만이었고 그 마저도 덮는 이불이 없어서인가 올린 거에 비해 그리 따뜻하진 않았다.
 
 
 
그렇게 지내고 나니 감기에 걸렸다. 부모님은 꿈 가지고 너무 그런다며 얼른 잊으라 하셨지만 그리 간단히 잊혀지지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그 뒤로 그 꿈은 꾸지 않았지만 느낌만은 아직 생생하게 남은 상태였다.
 
 
교복도 완전히 검은색이 아니기에 정말 다행이었지만, 한곳에 몇 명이 옹기종기 모여있으면 좀 오싹하긴 했다.
 
 
 
원래부터 추위를 잘 타는데 밤에 집에서 이불을 안덮고 잔 탓인지 감기가 나을라치면 또 걸리고 그게 이어지고 그랬다.
 
 
폐렴까지 가지는 않았지만 병원에서도 뭐라 하긴 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덮으려고 해도 몸이 거부하는데.
 
 
이게 드라마나 영화였다면 어디 무당집…까진 오바고 하다못해 심리 센터나 관련 기관에 갔겠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나도 어느 정도 포기해서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하는 생각과 함께 그럼에도 느껴지는 스트레스에 꽤 고생했다.
 
 
 
하도 스트레스라 그런지 감기만이 아니라 위장병도 걸리곤 했다.
 
 
친구한테도 얘기한 적 있지만 부모님의 반응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당시의 나에겐 무척이나 심각한 고민거리였는데.
 
 
 
그러다 중간고사 시험 성적도 좀 안좋게 나와서 된통 혼나고 나니까 다른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왜 내가 이렇게 겁 먹어야 하지? 내가 뭘 잘못했지? 하는 생각들.
 
 
이제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잤는데 진짜 그 꿈 하나 때문에 내가 이래야 하나?
 
 
그리고 그때쯤부터 자는 자세를 바꿔보았다. 앉아서 이불로 몸을 감싸면 그래도 그때의 감각과 달라서인가 괜찮았다.
 
 
물론 불편하기는 했지만 불안하게 누워서 이불도 덮지 않은 채로 자는 것보단 나은 거 같아서 진작 이렇게 할 걸 하고 앉아서 자곤 했다.
 
 
그렇게 하다가 어느 날 깨어나 보니 누워서 자고 있었다. 이불을 덮은 채로.
 
 
잘 때는 역시 몰랐는데 깨고 나니 바로 느낌이 와서 후다닥 이불을 걷어찼다.
 
 
 
 
그래도 그후 차근 차근 노력한 것과, 더 이상 그런 꿈을 꾸지 않았던 덕분인지 점차 나아졌다.
 
 
보자기나 다름없는 얇은 천부터 시작해서 점점 이불의 종류를 바꾸어 덮었다.
 
 
무릎 담요에서 평범한 이불로 바뀌기까지 시간이 좀 걸리긴 했다.
 
 
 
 
지금도 추위는 좀 잘 타지만 그때의 영향이 아직도 남아 있는지…
 
 
아니면 그때 이후로 아주 두꺼운 이불은 안덮게 된 게 익숙해진 건지…
 
 
더 이상 많이 두꺼운 이불은 덮지 않게 되었다.
 
 
적당히 두꺼우면서 많이 무겁지 않은 이불을 덮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고 나니 가위에도 눌려보고 무서운 꿈도 꿔봤지만 그때만큼 무섭진 않았고 의외로 금방 까먹게 됐다.
 
 
그때도 그랬으면 좋았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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