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천석 칼럼] 대통령에게 듣고 싶은 말 듣기 싫은 말


[강천석 칼럼] 대통령에게 듣고 싶은 말 듣기 싫은 말

船長 한마디에 가슴 철렁하는 국민 마음 생각해야

국민 힘 모아 위기 넘으려면 積弊 청산 방식 바꾸라

대통령에게 듣고 싶은 말이 있고 듣기 싫은 말이 있다. 위기 상황에선 더 그렇다. 파도가 높으면 선장 표정 먼저 살핀다. 비행기가 난기류에 덜컹이면 기내(機內) 방송 한마디에 소름이 돋았다 가신다. 대통령은 이런 국민 마음을 알까 모를까. 얼마 전 대통령 이야기가 자꾸 걸린다. 목에 걸린 가시처럼 거북하다. 파도가 심해지는 건 국민도 안다. 기체(機體)가 요동치는 것도 느낀다. 그렇다 해도 그 정도가 어떻길래 대통령이 저런 한숨 같은 소리를 토해내나. 다들 내막(內幕)을 궁금해하고 불안스러워한다.
대통령은 지난 10일 “안보 위기 상황에서 우리가 주도적으로 어떻게 할 여건이 못 된다”고 했다. “외부 요인이 이렇더라도 내부가 제대로 결속되고 단합한다면 충분히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했다. 지난 7월 G20 정상회의를 마치고 돌아와서 한 이야기는 더 진했다. “우리가 뼈저리게 느껴야 하는 것은 우리에게 가장 절박한 한반도 문제인데도 현실적으로 우리에게 해결할 힘이 없고 합의를 이끌어낼 힘도 없다는 사실”이라고 했다. 체념(諦念)이 섞였다는 말을 들을 법한 소리였다. 북한 문제 운전석에 앉아 보았지만 고장 난 자동차였다. 기어도 먹히지 않고 브레이크도 듣지 않았다. 얼마나 답답했겠는가. 심정이 이해가 간다.

사실 운전석이냐 조수석이냐는 원래 문제가 되지 않는 문제였다. 고개를 넘으면 됐지 운전석에 앉아 넘었느냐 조수석에 앉아 넘었느냐에 따라 달라질 게 없다. 작은 나라가 큰 나라와 관계에서 느끼는 콤플렉스의 하나다. 진짜 위기라면 그런 걸 가릴 계제도 안 된다. 2차 세계대전에서 영국을 이끈 윈스턴 처칠은 그렇게 믿고 말하고 행동했다. “위기 속에선 원칙과 기회주의와 임기응변의 차이가 없다. 동맹국 중 어느 쪽이 주도(主導)하느냐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살고 버티고 이기는 길을 가야 한다.” 처칠은 1944년 수백만 영국군을 아이젠하워 미군 사령관 휘하에 두는 걸 괘념치 않았다. 툴툴대는 영국군 장군들을 ‘우리 목표는 히틀러를 패망시키는 것 아니냐’는 말로 달랬다.

위기 극복 리더십의 본질은 예나 이제나 달라지지 않았다. 지도자가 국민이 가진 잠재력을 일깨워 위기에 대처하는 힘으로 바꾸는 것이다. 국민을 분발(奮發)시키려면 대통령 먼저 분발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위기를 직시(直視)하되 그 앞에서 주저앉아서는 안 된다. 위기에 맞서는 지도자는 담화나 연설도 동사(動詞) 단어를 사용하라고 한다. ‘일합시다’ ‘나갑시다’ ‘협력합시다’가 그런 단어다. ‘답답하다’ ‘막막하다’는 형용사(形容詞)에 기분을 싣는 건 금물(禁物)이다. 지도자의 기분은 즉각 국민에게 전염된다. 대통령이 이 상황에서 “우리가 주도적으로 할 일이 없다”고 핸들을 놓아버리면 어디로 흘러가겠는가. 선장 표정을 살피고 기장 한마디에 귀를 세우는 국민을 생각해야 한다.

김정은은 두말할 게 없다. 동맹국 트럼프 대통령·우방국 아베 총리·북한 후견국(後見國) 시진핑 주석·알쏭달쏭한 푸틴 대통령. 누구 하나 마음 놓이는 상대가 없다. 북한의 수소탄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실험 이후 사태는 더 급박해졌다. 최선을 목표로 하되 차선(次善)과 차차선(次次善) 카드도 쥐고 있어야 최악의 사태를 저지할 수 있다. 개기일식(皆旣日蝕)처럼 한국과 미국의 안보 이해가 완전히 겹쳐지던 시대가 아니다. 미국에겐 핵보다 미국 본토에 도달하는 ICBM 완성을 막는 게 더 절실해지고 있다. 미국과 중국 간 빅딜설(說)은 성사 여부 떠나 가슴 철렁하는 소식이다. 그 포장지를 뜯으면 한국은 어떤 처지일까. 대통령이 주도적으로 해야 할 일이 없는 게 아니다.

빈말로 시간을 낭비해선 안 된다. 대통령은 UN 연설에서 ‘평화’라는 단어를 32번 언급했다. 평화는 안보의 수단이 아니다. 안보의 결과다. 평화는 안보 없이 홀로 서지 못한다. 동맹이 불완전해도 이 험한 세상에서 동맹의 지렛대 없이 움직일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현 정부 들어 동맹을 흔드는 소리는 모두 대통령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 입에서 나왔다. 득(得)은 없고 실(失)만 남겼다. 대통령이 나서면 당장 막을 수 있는 일이다.

대통령은 ‘내부만 제대로 결속되고 단합한다면…’이라 했다. 옳은 말이다. 그러려면 단합을 위한 조치를 실천해야 한다. 배 바닥에 새 구멍을 계속 뚫으면서 무사히 강을 건너길 바랄 수는 없다. 현재와 과거를 싸움 붙이면 항상 미래가 진다. 청와대 캐비닛을 열 때마다 쏟아지는 전(前) 정권·전전(前前) 정권 비리(非理)는 그들만 물에 빠뜨리지 않는다. 배를 가라앉힌다. 적폐(積弊) 청산 방식을 바꾸도록 해야 한다. 시도 때도 없이 언론에 등장하는 대통령의 파안대소(破顔大笑) 사진 100장보다 이 한마디가 불안해하는 국민 마음을 어루만져 줄 것이다.

[강천석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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